다가서면 애써 뿌리치는 척한다. 애절했던 표정이 분노로 바뀌자 멀어졌던 그가 다가온다. 행복감에 젖던 것도 잠시, 둘은 다시 손을 놓는다. 남(男)과 여(女)가 몸으로 그리는 러브스토리다.

"저게 바로 룸바(rumba)입니다. 사랑할 때의 감정이 다 녹아 있죠." 이해동 라틴 국가대표 감독이 말하는 순간 음악이 바뀌었다. 이번엔 파소도블레(paso doble), 남자는 투우사가 되고, 여자는 그의 손에 들린 빨간 망토다.

성난 소와 맞서는 투우사의 유려한 움직임이 플로어를 채웠다. 비장미가 흐르던 분위기가 경쾌한 음악과 더불어 순식간에 밝아졌다. 발목이 꺾일 듯 통통 튀는 현란한 발놀림, 그건 바로 자이브(jive)였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향해

서울 마포구 김민 댄스아카데미에서 열린 댄스스포츠 국가대표 평가회 현장. 11월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나서는 국가대표들의 기량을 점검하는 자리였다. 이번 대회에는 모두 10개의 금메달이 걸려 있다.

11월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나서는 댄스스포츠 국가대표 조상효(왼쪽)·이세희가 왈츠를 추고 있다. 뒤의 커플은 국가대표 남상웅·송이나.

왈츠·탱고·퀵스텝·폭스트롯·비에니스왈츠 등 스탠더드 5종목과 차차차·자이브·삼바·파소도블레·룸바 등 라틴 5종목이다. 5종목 점수를 합해 순위를 가리는 '파이브 댄스'에 금이 둘, 비에니스왈츠와 룸바를 뺀 단일 종목에 금메달이 하나씩 걸려있다.

아시아 댄스스포츠는 한·중·일의 경쟁이다. 중국이 가장 강하고 한국과 일본이 뒤를 따르고 있다. 김민 대한댄스스포츠연맹 전무이사는 "우리 목표는 금메달 2~4개"라며 "중국의 텃세를 얼마나 이겨낼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3팀이 출전하는 스탠더드 종목은 손과 몸을 밀착시킨 남녀가 미끄러지듯 한 호흡으로 움직이는 '무빙 댄스'가 기본이다. 라틴 종목보다 몸 자체 움직임은 적지만 플로어를 넓게 쓰며 끊임없이 돌아야 해 체력 소모가 크다.

황인만 스탠더드 대표팀 감독에 따르면 종목별 핵심이 다르다. "탱고는 강약을 잘 조절해야 합니다. 폭스트롯은 구름 위를 걷듯 부드러워야 해요. 퀵스텝은 스피드, 왈츠는 흐름이 끊이지 않아야 합니다."

한국은 조상효·이세희의 파이브 댄스, 남상웅·송이나의 탱고에 기대를 걸고 있다. 반면 라틴은 스탠더드에 비해 개인의 역량이 더 발휘된다. 허리와 엉덩이의 움직임에 초점이 맞춰지고 표정도 중요한 표현 요소다.

이해인과 함께 파소도블레에 나서는 장세진은 "투우 다큐멘터리를 보며 투우사를 연구한다"고 했다. 장세진·이해인의 파소도블레, 김도현·박수묘의 차차차가 기대할 만하며 파이브 댄스 종목 김대동·유혜숙의 기량도 물이 올랐다.

댄스스포츠는 9명의 심판이 1분40초~2분가량의 연기를 보고 자세의 정확성과 예술성, 파워와 스피드, 플로어 사용법 등 36개의 세부 기준으로 채점해 순위를 가린다. 메달이 결정되는 파이널엔 6팀이 오른다.

엄청난 훈련량, 무대에선 아름답게

대표 선수들은 모두 늘씬하다. 다이어트를 하지 않아도 워낙 훈련량이 많아 저절로 체중 조절이 된다. 스탠더드 대표 송이나는 "5종목 연속 추는 걸 '뺑뺑이'라 하는데 3~4번 하고 나면 탈진한다"고 말했다.

하루 8~9시간 훈련은 기본으로 발목과 허리는 성할 날이 없다. 쉬는 시간엔 주로 음악을 듣는다. 대회 당일날 어떤 곡이 나올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각 종목의 음악을 숙지해야 한다.

이해동 라틴 감독은 "종목당 200여 곡이 있는데 부지런히 듣고 익히는 수밖에 없다"며 "잘 아는 음악이라면 흐름을 빨리 탈 수 있다. 선수들이 만날 이어폰을 꽂고 사는 이유"라고 말했다.

춤만큼 중요한 것이 의상이다. 특히 여자 드레스는 300만~400만원을 호가한다. 라틴 국가대표 박수묘는 "화장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며 "강렬한 인상을 주기 위해 눈을 강조하고 피부 톤을 어둡게 한다"고 말했다.

남자는 '올백 스타일'이 기본이다. 스탠더드 대표 조상효는 "머리가 한 올이라도 흐트러지면 경기가 풀리지 않는다"고 했다. 발 움직임이 많은 라틴 선수들은 발등 부분이 부드럽게 휘어지는 경기용 구두를, 스탠더드는 안정감을 주는 딱딱한 구두를 주로 신는다.

댄스스포츠는 파트너 간 호흡이 곧 실력이다.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여섯 커플은 호흡을 맞춘 지 최소 4년이 넘는다. 온종일 붙어있다 보니 실제 사랑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국가대표 6커플 중 4팀이 연인 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