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취권’은 1979년 국내에 개봉돼 큰 인기를 끌었다.

비틀대며 상대 공격을 피한다. 고꾸라질 듯하다간 적의 급소를 파고든다. 취권(醉拳)이다. 1978년 배우 청룽(成龍)이 주연을 맡은 동명(同名)의 영화로 세계에 알려진 무술이기도 하다. 독주(毒酒)에 취해 발개진 얼굴, '갈지(之)'자 걸음걸이가 트레이드마크인 취권은 도대체 무술 같지 않다. 그렇지만 취권은 소림무술에서 태어나 중국 남방에서 번창한 홍가권(洪家拳)에 속한 어엿한 권법이다. 게다가 홍가권에서도 가장 배우기 어려운 축에 속한다. 정식 명칭은 취팔선권(醉八仙拳), 즉 술에 취한 여덟 신선(神仙)의 몸놀림을 본뜬 것이다. 지팡이 짚고, 피리 불며 노새에 거꾸로 타는 것 같은 그 무술의 세계로 가보자.

황비홍의 취권

취권의 창시자는 영화 속에도 황비홍의 스승으로 나오는 소화자로 알려졌다. 청나라 시대 중반 무림 고수(高手)였던 소화자는 잃어버린 여동생을 찾으려는 절박함에 술을 마시고 정처 없이 떠돌다 취권을 만들었다고 한다.

취권은 소화자가 황비홍의 아버지 황기영에게 알려주고 황비홍이 여기에 다른 권법들을 모두 홍가권에 합쳤다. 애초의 홍가권은 호권(虎拳)과 학권(鶴拳)이 합쳐진 호학쌍형권을 기초로 소림 고수였던 홍의관이 만든 무술이었다.

황비홍이 집대성한 홍가권은 인각곤, 임세영 같은 제자에게 이어졌고 그중 한 줄기가 대만의 장극치에게 전수됐다. 영화 속 취권은 원화평(65) 감독 아래에 있던 무술감독이 장극치에게 취권을 배워 성룡에게 가르친 것이다.

취권은 홍가권의 절정

한국에도 장극치 선생의 직계 제자이자 황비홍의 4대 제자로 인정받는 고수가 있다. 인천에서 도장 '정무문 쿵후 총본관'을 운영하는 필서신(畢庶信·52) 관장이다. 그는 인천에서 태어난 중국 화교 2세다.

필서신 관장은“취권은 기묘한 매력을 가진 무술이다. 몸의 근육을 극한으로 단련해야 한다”며 다양한 동작 시범을 보였다.“ 상대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 허를 찌르 는 것이 취권의 핵심”이라고 했다.

중국 산둥성 출신으로 사업차 한국을 오갔던 그의 아버지는 중국에 공산 혁명이 일어나면서 인천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필 관장은 많은 중국 고수들이 함께 수련하던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성장하며 자연스레 무술을 접했다.

16세 때 중국 북방 무예인 팔괘장을 배우며 무술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배울수록 점점 중국 본토에서 제대로 무술을 배우고 싶은 갈증을 느낀 그에게 결정적인 계기가 1977년에 찾아왔다.

대만 중국무술대회에 참가한 그의 앞에서 장극치 선생이 취권을 시연한 것이다. 그는 "기이한 아름다움에 빠져 넋을 잃었다"고 했다. 필 관장은 바로 대만으로 '무술 유학'을 떠나 장극치 선생 아래에 들어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필 관장은 '취권이 아름답긴 하지만, 무술의 파괴력을 갖고 있을까'란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취권을 제대로 배우기 시작한 것은 홍가권을 5년간 수련한 뒤였다.

1983년부터 한국에서 도장을 운영한 필 관장은 "2년간 대만을 더 오간 뒤에야 취권을 완성했다"며 "온몸의 근육을 극도로 단련해야 비틀거리면서도 균형을 찾아 빠르고 정확한 공격을 뿜어낼 수 있다"고 했다.

손가락으로 상대를 찢어라

영화에선 독주를 사정없이 들이켜지만 실전에선 술을 먹지 않는다. 술에 취한 척, 허허실실(虛虛實實) 전법으로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이다. 취권의 핵심은 상대가 예측할 수 없는 움직임 속에서 번개처럼 날리는 '한 방'이다.

술잔을 든 듯, 구부정하게 편 검지와 엄지로 상대의 목덜미, 겨드랑이, 날개 뼈 등을 순간적으로 잡고 손목을 돌려 살과 근육을 뜯어내는 것이다. 필 관장은 "손가락 끝에서부터 발가락까지 모든 힘을 키워야 한다"며 "그렇기 때문에 뒤로 가거나 옆으로 걷는 자유로운 움직임 속에서 순간적인 일격이 나온다"고 말했다.

필 관장은 "취권만 갖고선 고수가 될 수 없다"고 했다. 기술과 체력을 바탕으로 취권뿐 아니라 모든 권법을 자유자재로 응용할 수 있는 수준이 돼야 한다는 뜻이었다. 필 관장은 여기에 '무림 고수'가 될 수 있는 두 가지 조건을 더 붙였다. 강한 상대에 주눅들지 않는 용기와 상대의 얼굴에 주먹을 꽂을 수 있는 독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