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전 10시 서울성모병원 본관 11층 이식(移植) 병동. 앙상한 팔에 링거를 꽂은 간경화 환자 박모(48)씨 앞에 분홍색 조끼를 입은 낯선 남녀 3명이 멈춰 섰다. 박씨가 침울하게 세 사람을 올려다봤다. 양볼이 홀쭉하고 눈(眼)이 귤처럼 노랬다.

이에스더(53)씨가 박씨의 손을 잡고 어깨를 가볍게 어루만졌다. "저희들은 이 병원에서 간 이식 수술을 받고 살아난 사람들입니다. 지금은 자원봉사 삼아 매주 목요일 병동을 돌며 이식병동 입원 환자들을 위로하고 있어요."

9일 오전 서울 반포동 서울성모병원 이식병동에서, 장기기증 등을 받아 새 생명을 얻은 자원봉사자 강인석·유세상·이에스더(왼쪽부터)씨가 환자 박모씨를 위로하고 있다. 이들은 매주 목요일 병동을 돌면서 이식 수술을 앞둔 환자들과 가족을 격려하고 있다.

박씨는 "6년 전 고1 아들이 간을 나눠줘서 살아났는데 지난달 갑자기 황달이 왔다"고 했다. 아들(23)은 대학 입학 후 형편이 어려워 내내 휴학하다 이번에 복학했다. 1학년이다. 박씨는 사업이 안 돼 스트레스를 받아 병이 도졌다.

자원봉사자 유세상(62)씨와 강인석(60)씨가 "돈도 중요하지만 건강이 더 중요하니 마음 편하게 먹어야 한다"고 했다. 박씨의 눈에 물기가 비쳤다. 봉사자들은 다음 병상으로 옮겼다.

이들은 서울성모병원 간 이식인 모임 회원들이다. 이 병원에서 간 이식 수술을 받은 사람 500여명 가운데 20여명이 매주 목요일 이식병동을 돌면서 수술을 앞둔 환자들을 위로하고 간병 정보도 교환한다.

모임 총무를 맡은 이씨는 일찍 남편과 헤어진 뒤 학습지 교사, 중소기업 사무원으로 두 아들을 혼자 키웠다. 먹고살기 바빠 간염 치료를 부실하게 받은 것이 간경화로 이어졌다.

2003년 1월 6일 새벽 6시, 동네병원 입원실에서 복수를 빼고 있을 때 서울성모병원 의료진으로부터 "뇌사자가 나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의료진은 "수술비 5000만원이 준비됐느냐" 물었다. 이씨는 "살던 방 빼고 전 재산이 5만원이었는데 저도 모르게 '준비됐다'는 말이 튀어나왔다"고 했다. 살고 싶었다.

이씨는 살아났다는 사실이 감사해 자원봉사를 거르지 않는다고 했다. 자기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돕고 싶어서, 올 초 백석대 상담학과에도 들어갔다. 이씨는 "나를 살린 기증자에 대해 '33세 남자'라는 것밖에 모르지만 평생 그분 몫까지 좋은 일을 하고 가겠다"고 했다.

이날 이씨와 함께 자원봉사를 한 유씨와 강씨는 각각 부인과 동생으로부터 간을 나눠 받고 목숨을 건졌다. 병세는 중한데 뇌사자 장기기증이 적어 도저히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었던 까닭이다. 2009년 기준 간 이식 대기자는 3737명. 이 중 236명만 뇌사자 장기기증으로 생명을 찾고, 3501명은 여전히 절박하게 대기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