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06~2010)에 따라 지난 5년간 42조5000억원을 쏟아부었지만, 출산율은 오히려 더 떨어졌다(2007년 1.25명→2009년 1.15명). 당초 정부는 출산율 1.6명을 목표치로 잡았으니, 결과적으로 실패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정책 대상을 저소득층 등으로 지나치게 협소하게 잡아 오히려 중산층의 출산율을 떨어뜨리는 등 실효성이 떨어졌다"고 지적한다.

10일 보건복지부는 이러한 지적을 보완해 220여개 과제로 중무장한 '제2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11~2015년)' 시안(試案)을 발표했다. 복지부는 2015년의 출산율 수치 목표를 제시하지 않은 채 2030년엔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평균 수준(1.71명)을 회복한다는 장기 목표만 내놓았다.

본지가 전문가 5명에게 평가를 들었더니 "정책 대상을 중산층과 베이비붐 세대 등으로 확대한 것은 바람직하지만, 많은 정책을 백과사전식으로 나열했을 뿐 선택과 집중의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5명의 전문가들은 100점 만점에 평균 76.8점(100점 만점)을 줬다.

10일 오전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제2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 대책 당·정회의에서 진수희 복지부 장관(가운데)이 한나라당 강명순(왼쪽), 김금래 의원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방향성은 맞다"

2차 계획의 저출산 정책은 기존의 저소득층 중심에서 중산층까지 정책대상이 확대됐고, 고령화 대책 역시 노인층 중심에서 50대 베이비붐세대까지 포함하는 방향으로 개편됐다. 이 부분에 대해 5인의 전문가는 모두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김승권 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육아휴직 제도 개선, 탄력근무제, 재택근무 등 '유연한 근무' 형태의 확산 등 사회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정책이 도입됐다는 점도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김혜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가족정책센터장은 "중산층이 극빈층보다 출산율이 더 낮다는 측면에서 맞벌이 부부 등을 정책대상에 포함한 것은 올바른 방향"이라고 말했다.

◆백화점식…'선택과 집중' 없어

이번 2차 계획엔 220여가지에 달하는 워낙 다양한 분야의 대책들을 망라하다보니 '지방재정교부금 효율화'라는 케케묵은 과제가 저출산·고령화 정책에 포함되는가 하면 고령친화산업의 해외시장 선점 인프라 확충 같은 산업정책도 들어가 있다.

노동연구원 방하남 선임연구위원은 "복지부가 저출산·고령화 정책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너무 욕심을 부리는 것 같은데 선택과 집중의 고민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두섭 한양대 교수(사회학)는 "1차 계획 때의 경험을 토대로 효과성이 높은 정책은 늘리고 불필요한 정책은 버리는 작업이 필요한데 그런 노력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복지부는 2차 기본계획의 소요 비용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지만 5년간 80조원 안팎의 예산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1년 예산의 27%에 해당한다.

◆정년 연장 논의는 왜 없나

방하남 선임연구위원은 "조기 퇴직 속에서 '마(魔)의 10년'을 헤쳐 나가야 하는 50대를 정책 대상으로 편입시키면서 정작 정년 연장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싱가포르·대만 등은 저출산·고령화사회로 가면서 사회적 결단을 내려 정년을 연장했는데 우리도 조기 은퇴 후 공적연금을 받기까지 공백을 버텨내기 위한 강한 해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혼을 장려하는 정책'도 포함되지 않았다. 안종범 성균관대 교수는 "기혼 여성 중심의 대책이 많은데 저출산 해결의 핵심은 '미혼 여성들이 결혼하게 하는 것'"이라며 "금전적 지원도 좋지만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위상을 높이는 근본적인 대책들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혜영 가족정책센터장은 "사회 구성원들이 저출산의 심각성에 대해 절감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문화운동도 논의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