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親朴)계가 뿔 났다. 이명박 대통령이 8일 단행한 개각이 '박근혜 죽이기' 의도를 담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한나라당 내 친박계 의원들 대다수는 "김태호 총리 내정자를 박 전 대표의 차기 대권 경쟁 대항마로 내세우고, 이재오 특임장관 내정자를 조련사로 배치해 박 전 대표를 압박하려는 의도가 이번 개각에 담겼다"며 9일 본격적인 반발에 나섰다.

친박 핵심 뽑아내기? 박근혜(사진 왼쪽) 전 한나라당 대표가 당 대표 시절인 2005년 12월 당시 비서실장이던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내정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친박계인 유승민 의원은 "김태호 총리, 이재오 장관은 이 대통령이 내 뜻대로 앞으로의 정국과 차기 대권구도를 가져가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라고 말했다. 친위 세력들을 배치하고 박 전 대표를 고립시키려는 의도가 보인다는 것이다. 구상찬 의원도 "박 전 대표에게 순탄하게 대권 후보 자리를 넘겨주지 않을 것으로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 대표 경선 전당대회 표결결과를 보면 당내 주류 대 비주류의 세력 분포는 7대3 정도인데, 2012년 대선 후보 경선 때까지 박 전 대표에게 맞붙을 만한 후보군을 양성하면 충분히 주류측이 박 전 대표를 꺾을 수 있다는 계산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40대의 자수성가형 전직 지사 출신 총리 내정자를 발탁했고, 중앙정치에 취약한 부분은 이 대통령의 최측근인 4선 관록의 이재오 장관 내정자가 '지도'하는 식으로 정리했다는 관측이다.

일부 친박계는 이재오 의원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이 대통령이 개헌을 염두에 둔 것으로 봤다. 박 전 대표의 소신은 '대통령 중임제'인데, 주류측이 '권력 분산형 권력구조'를 매개로 강력한 대권 주자인 박 전 대표를 배제하고 야당과 손잡으려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朴의 대항마로? 박근혜(사진 왼쪽) 전 한나라당 대표가 당 대표로 있던 2004년 5월 당시 경남지사 보궐선거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한 김태호 국무총리 내정자의 손을 잡고 지원 유세를 하고 있다.

박 전 대표의 핵심 측근인 유정복 의원의 입각에 대한 반응도 썩 좋지 않다. 서병수 최고위원은 "하루 전에야 청와대에서 연락을 받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게끔 (청와대측이) 밀어붙인 것은 당 화합을 위한 모양새는 아닌 것 같다"며 "내각 추천 과정에서 반성할 점은 없었는지 뒤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친박계 의원들은 "친박 핵심 뽑아내기 아니냐"는 격한 반응까지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안상수 당 대표의 제안으로 진행 중인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 간의 회동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말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박 전 대표는 개각에 대해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작년 9월 초 최경환 의원이 입각할 때와 지금의 박 전 대표 반응은 전혀 다르다. 당시 박 전 대표는 10일 전쯤인 8월 말에 "조만간 좋은 일 있을 거예요"라고 최 의원에게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에는 개각과 관련해 청와대측의 분명한 언질이 당시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번에 박 전 대표가 침묵하는 것은 그 정도의 교감이 없었기 때문이란 분석이 있다.

친박계 일부 의원들은 "청와대가 우리를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 명백해진 만큼 박 전 대표가 이제는 뭔가 결심해야 한다"며 "박 전 대표도 정치적 행동에 적극 나설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