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초등학생에게도 피켓시위 등을 통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려 논란이 되고 있다. 어린 학생들에게도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마땅히 줘야 한다는 견해가 있는 반면, 판단력이 부족한 초등학생의 시위행위를 인정하자는 인권위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인권위는 29일 초등학교 교사가 초등생들의 시위 피켓을 빼앗은 행위를 인권침해로 판단하고 해당 교사에게 재발방지 교육을 할 것을 학교장에게 권고했다고 밝혔다.

인권위에 따르면, 이 권고는 2008년의 초등학생들 시위와 관련돼 있다. 서울 강동구의 한 초등학교 6학년 담임이었던 최모 교사는 2008년 12월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허락했다는 이유로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해임 처분을 받았다. 다음날 일부 학생들이 수업시간 전 교문 앞에서 '선생님을 빼앗지 말아 주세요'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했고, 교장과 일부 교사들은 학생들의 종이 피켓 등을 빼앗아 찢었다. 해당 교장은 인권위에 "당시 최 교사가 해임징계 수령서를 받았음에도 다음날 '출근투쟁'의 일환으로 전교조 회원 10여명과 학생 8명, 시민단체와 보도진 등 상당수 사람을 이끌고 학교 건물로 몰려왔기 때문에 학생들이 이런 정치적 시위에 휘말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제지하는 과정에서 피켓을 찢는 행위가 일어났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인권위는 결정문에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학교 시설물을 훼손하지 않았음에도 피켓을 수거한 것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밝혔다. 인권위 관계자는 "나이에 상관없이 표현의 자유는 광범위하게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다수 학부모는 '표현의 자유도 좋지만, 인권위가 무리한 판단을 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초등학교 교사이면서 초등생 자녀를 둔 임모(36)씨는 "학교는 화합을 가르쳐야 하는 곳인데 집회가 허용되면 학내에 갈등이 일어나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2학년 자녀를 둔 최분남(49)씨도 "초등학생들이 집회에 나갈 정도로 판단력이 원숙하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했다. 초등학교 4학년 자녀를 둔 최윤정(41)씨는 "초등학생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에는 동감하지만 어른들이 시위할 때도 간혹 사고가 나는데 우리 아이가 시위 나간다고 하면 걱정이 많이 될 것 같다"고 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도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고 개성을 존중하지만 미성숙하고 판단력이 부족한 초등학생의 행동에까지 개입하는 것은 인권위의 인권 포퓰리즘"이라고 인권위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인권위 결정이 당연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교수는 "초등학생이건 중학생이건 표현의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 학생이라는 특수 신분 때문에 기본권이 침해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교육 당국은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서울시교육청은 "학생인권조례가 본격 추진되고 있지 않아 뭐라 밝히기 어렵다"고 했다. 경기도교육청은 "학생인권조례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당초 시위집회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에 관한 항목을 포함하려 했으나 의견수렴 과정에서 삭제했다"며 "우리 사회의 일반적 정서를 반영한 결정이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