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희 경제부 차장대우

서울의 한 고등학교 여교사가 EBS의 인터넷 수능 강의에서 '군(軍) 비하 발언'을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받고 있다. 강의 도중 "군대 가서 뭐 배우고 와요? 죽이는 거 배워오죠. 여자들이 그렇게 힘들게 낳아놓으면 걔네(남자)는 죽이는 거 배워오죠. 그런데 뭘 잘했다는 거죠. 도대체가…"라고 말한 영상이 뒤늦게 인터넷에 퍼진 것이다. 네티즌들은 '군살녀(軍殺女)'라고 부르며 분노하고, 급기야 국방부까지 "국가의 부름을 받고 젊은 시절을 희생했던 예비역과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현역에게 깊은 상처를 준다"고 유감을 표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도 갚는다'고 하지만, 인기 강사이던 이 여교사는 잘못된 말로 인해 감당하기도 힘든 억만냥 빚을 진 상황이 됐다.

그런데 동영상을 보며 당혹스러웠던 건 "군대는 죽이는 거 배워오는 곳"이라는 표현뿐만이 아니었다. 이 여교사는 '언어 변화'를 설명하면서 "남자는 주로 비표준형 말을 만들고, 여자는 표준형을 주로 만든다"는 논리를 확대시키다 군대 관련 실언(失言)을 했다. "남자들이 쓰는 말은 좋은 말이 아닌 거예요. 여자들이 쓰는 말은 어떤 말? 좋은 말이죠. 역시 남자들은 폭력적이고 좋지 않아요.…내가 너무 '남존여비(男尊女卑)'에 거꾸로 가고 있죠. 여존남비(女尊男卑). 어쨌든 기분 좋습니다. "

사회 전체가 '막말 사회'가 되면서, 말이란 게 내가 속하지 않은 집단을 모욕 주고 할퀴는 독(毒)이 되고 있다. 얼마 전에도 여당 국회의원이 대학생들과의 저녁 자리에서 "아나운서는 다 줘야 하는데 그래도 하겠느냐" "여자는 차(車)값, 남자 집값"이라고 여성 비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당에서 제명당했다. 야당 소속 군수는 "누드 사진 찍자"고 부하 여직원을 성희롱했다. 이처럼 '남존여비' 망언(妄言)의 구태(舊態)도 여전한데, '키 작은 남자는 루저' '군대는 죽이는 거 배워오는 곳'처럼 '여존남비' 망언까지 보태지니 점점 더 말이 거친 사회가 되어간다.

남존여비형 망언이든, 여존남비형 망언이든 개인의 순간적인 말실수로만 넘길 건 아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감성지능'의 저자이자 심리학자인 대니얼 골먼의 이론을 빌리자면 이런 '모욕 맹독성'은 감성지능과 사회지능이 부족해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그에 따르면, 감성지능이란 타인의 감성과 입장도 이해하는 감정이입을 포함한다. 감성지능을 타인과의 사회적 관계로 확대한 것이 사회지능인데, 감성지능이나 사회지능이 떨어지는 사회, 그러니까 타인의 입장이나 감정에 둔감하고 자기 중심성이 난무하는 사회는 인간적 유대가 무너진 사회라고 했다.

만약 "군대는 사람 죽이는 거 배워오는 곳"이라고 말한 그 여교사에게 군대 간 남동생이 있다면, 잠시라도 나라와 군대의 존재 의미를 진지하게 곱씹어 봤다면 아무리 순간적인 상황이라고 해도 그런 말을 내뱉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 논리로, 단 한 번이라도 내 아내, 내 딸이 보고 들어도 괜찮은 언행일까를 생각해본다면 성희롱 발언이나 막말도 아무렇지 않게 해대는 무례한 남성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감성지능, 사회지능이 높은 사회는 서로를 존중하는 '남존여존(男尊女尊)'의 사회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 모욕주고 끌어내리는 데 익숙한 '남비여비(男卑女卑)'의 사회로 변해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