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민 디지털뉴스부장

작년 11월, 고교 3학년생 3명이 경찰에게 붙잡혔다. 7, 8세로 보이는 남자 어린이를 이종(異種)격투기의 한 타격 방식인 로킥(low kick)으로 걷어차 넘어뜨린 혐의였다. 그런데 이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 것은 이들이 중3 시절인 3년 전이었다. 그때 이들이 휴대폰으로 찍은 동영상이 최근 인터넷에 공개돼 사회적 공분(公憤)이 일었고, 결국 이들은 그때 일로 체포됐다.

지난 18일에는 청년 4명이 한 유적지에 전시된 '사또' 모형의 목을 비틀고 발로 차 훼손하는 동영상이 공개됐다. 일행 중 한 명이 '자랑'이라도 되는 양 인터넷에 올렸지만, 결국 이 일을 그들은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지 모른다.

조선닷컴에는 자신에 대한 기사를 삭제할 수 없느냐는 문의가 종종 들어온다. 검색창에 자신의 이름을 입력하면 과거 범죄 사실을 보도한 기사가 계속 떠, 이미 형기(刑期)를 마치고도 새 삶을 시작하기가 어렵다는 하소연이다.

최근 수년간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이른바 '지하철 개똥녀'나 환경미화원에게 욕설을 퍼부었던 '패륜녀', 키 작은 남성을 깎아내렸던 '루저녀' 등에 대한 기사는 지금도 인터넷에 떠다닌다. 이들 중 한 여성은 한 대기업에서 인턴 근무 첫날 '과거 행적'이 드러나 잘렸다는 얘기도 퍼졌다. 지난 20일엔 많은 이들이 까맣게 잊고 있었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2002년 방북(訪北) 동영상이 '느닷없이' 인터넷에 재등장했다.

지난 19일 뉴욕타임스에 소개된 외국의 사례. 앤드루 펠드마는 캐나다 밴쿠버에서 꽤 널리 알려진 66세의 심리학자였다. 그러나 2007년 4월 시애틀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미국으로 들어가려던 그의 계획은 좌절됐다. 미 국경수비대원이 구글로 그의 이름을 치자, 근 40년 전 그가 환각 물질인 LSD의 심리 치료 효과를 연구하기 위해 직접 사용해 발표한 논문이 나온 것이다. 결국 그는 젊은 시절 금지약물을 복용했다는 전력(前歷) 탓에, 입국이 거절됐다.

같은 해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랭커스터의 한 고교에서 교생실습을 하던 대학생 스테이시 스나이더는 소셜네트워킹 사이트인 '마이 스페이스'에 해적 선장의 모자를 쓰고 맥주를 마시는 사진을 올렸다가 교직(敎職)의 꿈을 포기해야 했다. 대학 측은 "미성년자인 학생들에게 음주를 권장할 수 있는 사진으로, 직업윤리에 어긋난다"며, 학위 수여를 거부했다.

우리는 잊을 수 있기 때문에, 서로를 용납하기도 한다. 특히 인격적으로 미성숙해 철없는 행동을 저지른 경우에는 이를 흉악 범죄자의 범행이나, 정치인과 같은 공인(公人)들이 무책임하게 내뱉고 뒤집는 언행과 동일시할 수는 없다. 성숙해지면서 과거의 잘못을 스스로 반성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때론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인터넷은 사회적 존경과 주목을 받아오던 유명인사의 교묘한 잘못과, 청소년이 치기(稚氣)와 약간의 반항심으로 저지른 잘못 모두를 영원히 기록하고 기억한다.

작년 가을 '삭제: 디지털 시대의 망각(忘却)이라는 덕목(Delete: The Virtue of Forgetting in the Digital Age)'을 쓴 싱가포르 국립대 빅터 메이어-숀버거 교수는 이 책에서 이렇게 물었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기억하다 보니 결국 남들뿐 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용서하지 못하게 되지는 않을까." 우리는 이제 '잊는' 방법을 배워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