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익 논설위원

일본이 한국 강제병합 100주년이 되는 8월 29일에 맞춰 총리 이름으로 한국 식민지배를 사과하는 담화 발표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이 담화에 최대한 성의를 담되, 구체적인 내용과 형식은 조율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이 2차대전에서 패한 지 65년이 지났지만 과거의 침략과 만행을 진정 반성했다고 보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일본은 주변국들이 사과의 진정성을 믿어줄 때까지 사과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렇다 해도 일본의 한국에 대한 사과는 정말 올 8월이 마지막이 됐으면 좋겠다. 사과도 잦으면 습관이 된다. 인간관계에서도 행동은 뒤따르지 않으면서 '미안하다' '죄송하다'만 되풀이하는 사람은 용서는커녕 비웃음과 불신의 대상이다. 침략 100주년으로 큰 매듭이 지어지는 해에조차 피해(被害) 국민을 움직이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공허한 사과의 행진은 끝낼 수가 없다.

일본 다나카 총리는 1972년 중·일 국교정상화를 위해 중국에 갔을 때 "일본이 중국민에게 많은 폐(迷惑)를 끼친 데 깊은 반성의 뜻을 밝힌다"고 했다. 이에 대해 주은래 중국 총리가 "'폐를 끼쳤다'는 말은 길 가는 여성의 바지에 물을 엎질렀을 때 쓰는 말이다. 일본은 중국에 가져다준 손실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라고 침을 놓자 일본은 부랴부랴 사죄 표현의 수위를 높였다. 그 후 일본 총리나 일왕(日王)이 중국에 한 사죄가 20번 넘는다는 조사가 있다.

8월 발표될 담화는 이른바 '무라야마 담화' 수준을 뛰어넘을 것이냐가 관심사다. 사회당 출신의 무라야마(村山) 총리는 1995년 8월 15일 일본 종전(終戰) 50주년을 맞아 "(과거 침략에)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한다"고 했고, 이는 전후 일본 총리가 한 가장 높은 수준의 사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일본이 그간 해온 사과와 망언의 역사를 돌아볼 때 '통절(痛切)'이나 '진심(眞心)'보다 더한 말이 들어가면 어떻고 안 들어가면 어떻겠는가. 중요한 것은 외교적 표현의 수위(水位)를 놓고 조율을 하느니 마느니 만지작거리는 게 아니다. 과거의 잘못과 대면하는 가장 정직한 자세로 한국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독일폴란드에 대해 그걸 했다. 1970년 12월 서독·폴란드 정상화 조약 체결을 위해 폴란드에 간 브란트 서독 총리는 예고 없이 바르샤바의 유대인 희생자 위령비를 찾아가 무릎 꿇었다. 서양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건 항복을 뜻한다. 진보잡지 슈피겔까지 나서서 비난하자 브란트는 "이것은 나와 독일의 수치가 아니다. 나는 독일 현대사의 멍에를 생각하며, 사람들이 말로써는 어찌해 볼 수 없을 때 하는 것을 했을 따름이다"고 했다. 겨울비 내리는 위령비 앞에서 우산도 안 쓰고, 물 고인 시멘트 바닥에 무릎 꿇고 눈물 흘리며 독일의 과거를 사죄하는 브란트의 모습은 TV를 통해 생중계 되며 폴란드 국민의 마음을 흔들었다. 폴란드 총리는 이동하는 차 안에서 말없이 브란트를 끌어안고 눈물 흘렸다. 1944년 나치에 항거해 바르샤바 봉기를 이끌었던 마레크 에델만조차 브란트가 무릎 꿇은 것을 '위대한 행위'라고 평가했다. 브란트 사죄 후 독일은 철저히 다시 태어났다. 폴란드 국민은 바르샤바에 '브란트 광장'을 만들어 독일의 참회에 화답했다.

브란트처럼 무릎을 꿇라는 게 아니다. 올 8월 '이걸로 끝'이라고 할 만한 일본의 진정어린 사과를 보고 싶단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