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오후. 서울 송파구 거여동 서내과의원의 서대원(44) 원장은 스리랑카인 환자 라피(44)씨와 10분 넘게 진료 상담을 하고 있었다. '기침을 자주 하고 몸이 무겁고 아프다'는 말에 서 원장은 "감기 몸살이니 너무 걱정하진 말라"고 말한 뒤 처방을 내렸다. 라피씨는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곤 진료비로 1000원을 내고 갔다.

간호사 이정미(30)씨는 "우리 병원에서 진료받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진료비는 모두 1000원"이라고 했다. 라피씨는 이 병원을 5년째 다니는 단골이다.

동네 사람들은 서 원장을 '마천동 슈바이처'라고 부른다. 외국인 노동자와 홀로 지내는 노인 등을 위해 파격적으로 싸게 진료해주기 때문이다.

서대원 원장이 외국인 근로자를 진료하고 있다. 그는 “아무래도 ‘슈바이처’란 별명은 좀 거북하다”며 “기왕이면 ‘해리 포터’라고 불러주면 좋겠다”고 했다. 환자들에게 존경받는 의사이기보다는 친근한 의사가 되고 싶다는 뜻이다.

10년 전, 서 원장이 병원을 열 때부터 마천동에는 외국인 노동자가 많았다.

이들은 불법체류자라는 사실이 드러날까 걱정돼서, 또는 비싼 진료비가 부담스러워서'참을 수 없을 만큼 아플 때'가 돼야만 병원을 찾곤 했다. 한푼 한푼 모아 고국으로 보내는 그들로선 몇천원이 아까울 수밖에 없었다. 이를 본 서 원장은 진료비를 받지 않고 그냥 보냈다.

소문이 나면서 서 원장의 병원은 '외국인 노동자 병원'이 됐다. 서 원장은 "병원에 등록된 외국인 노동자만 700명 정도 된다"고 했다. 5년 전부터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공짜 진료를 미안해하기에 형식적으로 1000원을 받고 있다.

서 원장은 "동네 철공소 앞을 비롯해 발길 옮기는 곳마다 만나게 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반갑게 손 흔들며 인사한다"며 "그럴 때면 마음이 푸근해진다"고 했다.

그는 형편이 어려운 노인 환자들도 돌보고 있다. 서 원장은 개원한 지 두 달 됐을 때 한 할머니 환자로부터 "의료계가 파업하는 바람에 근처 노인요양원에도 의사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요양원에 의사가 다시 올 때까지만 가서 진료하자'며 자원봉사 진료를 나갔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그곳 어르신들과 정이 들어 양말이나 속옷 같은 생일 선물도 사 들고 찾아간다.

"동네에 아들과 둘이 사는 할머니 환자가 있어요, 그런데 이 아들이 노모를 자주 때리고 돈을 뺏곤 해요. 그런데도 이 할머니는 '장성한 아들과 같이 살고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 수급대상자도 될 수 없어요. 정말 딱한 일이죠." 그는 "앞으로 노인의학을 좀 더 공부해서 이렇게 힘들게 사시는 분들에게 정말로 도움되는 노인병원을 짓고 싶다"고 했다.

그는 지체장애인 보호시설 '소망의 집'에도 14년째 나가고 있다. 경찰대병원 인턴이던 시절에 진료봉사를 다닌 것이 계기가 됐다.

서 원장은 "주말에도 바쁘고 다른 의사들보다 돈도 못 버는데, 다 이해해주고 사는 아내가 고마울 뿐"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