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이 있었다. 80년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슈퍼스타 조용필은 산사에서 올린 극비 결혼식으로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에이즈설에 휩싸인 주현미의 경우처럼 실체가 없는 뜬소문에 가슴을 친 주인공들도 있었다. 90년대 후반 탤런트 서갑숙은 금기시돼온 불문율을 깨고 포르노그라피의 주역으로 당당히 맞섰다. 시간을 뛰어넘어 연예가를 관통하고 있는 '사건과 비화'를 3회에 나눠 싣는다.





'황당 괴담' 급속 확산… 수십년간 '깊은 속앓이'
주현미 '에이즈 감염설'

연예계 가십중엔 다소 황당무계한 얘기가 많다. 그런데 소문을 접한 사람들의 태도는 더 납득이 안간다. '절대 믿기 힘든 얘기'라고 스스로 확신하면서도 "그거, 진짜래요?" 하며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마치 사실인양 주변사람들에게 살을 붙여 전파한다.

'에이즈 감염설' '흑인아이 출산설' '대기업회장 애첩설' 등 한때 연예가를 휩쓸었던 이슈들은 지금도 연예계 루머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그만큼 세인들의 기억에 깊이 각인된 쇼킹한 사건(?)이었던 탓이다.

80~90년대 트로트계 최고 스타 주현미가 에이즈에 걸렸다는 루머는 사회적으로도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근래 '신체의 특정부위 훼손설'에 휩싸이며 곤욕을 치렀던 가수 나훈아의 사건을 떠올리게 할 만큼 엄청난 후유증을 남겼다.

소문이 등장한 1994년은 주현미의 인기가 절정에 달하던 시기다.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기타리스트이자 락그룹 EXIT의 보컬이었던 임동신과 결혼한지 6년째 되던 무렵이었다.

'오비이락?' 그런데 공교롭게도 소문이 나돈지 얼마 안돼 주현미는 몰라보게 야윈 모습으로 활동을 중단했고, 에이즈 관련 단체에 후원금을 기부하기도 했다.

소문의 파장은 인기와 비례해 눈덩이처럼 커졌고 모 잡지가 주현미를 염두에 둔 이니셜로 이를 보도하면서 에이즈설을 더욱 부채질했다.

화교출신의 주현미는 중앙대 약대를 졸업하고 약사(한울약국)로 평범하게 살다 작곡가 정종택의 권유로 1984년 김준규와 함께 메들리 음반 '쌍쌍파티'를 취입했다. 고속도로 메들리 전성시대가 열리면서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탄 뒤 이듬해 '비 내리는 영동교'로 바람을 일으켰고 이후 '신사동 그 사람' 등으로 가수왕에 올랐다.

그녀에겐 같은 시기에 인기를 끈 심수봉의 애절함과는 다른 밝고 경쾌한 이미지와 깨끗한 목소리 톤이 독자적인 팬층을 구축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대학 2학년때인 1981년 강변 가요제에서 입상한 경력이 있는데다 약사가수라는 특별한 배경도 한몫했다.

주현미는 15년이 지난 최근에야 당시 사건에 대한 심경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한 TV연예프로그램을 통해 그녀는 "지금은 폐간된 잡지의 한 여기자가 악성 루머를 불거지게 했다"며 "얼굴은 본 적이 없지만 아직까지도 그 기자의 이름이 잊혀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정소녀 '흑인아이 출산설'

70~80년대 최고 스타였던 탤런트 정소녀는 '흑인 아이를 낳았다'는 실체없는 괴소문에 시달렸다. '아프리카 가봉 대통령과의 관계를 통해 아이를 출산했다.' 내용도 충격적이었다.

정소녀는 TBC 시절 허참과 '쇼쇼쇼'를 진행한데 이어 '가족오락관' MC로 20년 가까이 활동했고. 가수 최병걸과 '그 사람'을 불러, 연기자-MC-가수로 명성을 날렸다. 1996년 드라마 '파리 공원의 아침'을 끝으로 활동을 중단했다가 지난해 SBS 주말극 '그대 웃어요'로 컴백했다. 디지털 싱글 음반 '깜빡'을 발표하며 가수로도 복귀했다.

컴백후 그녀는 TV 토크쇼에 출연해 "흑인아이 출산설은 터무니 없는 소문"이라고 직접 해명했다. 정소녀는 "한창 인기를 누리며 CF가 쏟아졌는데 (악성루머가 터진 이후) 갑자기 광고출연이 끊겼다"면서 "가봉이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도 모르며, 도대체 이런 말도 안 되는 루머를 퍼뜨린 자가 누구인지 얼굴이라도 봤으면 좋겠다"며 울분을 토했다.

'정소녀의 흑인 출산설'은 연예가의 대표적인 악성 루머로 존재해오다 급기야 모 신문사가 가봉 현지까지 특파원을 보내 '소문의 진상'을 현지 취재해 보도했을 만큼 질기고도 오랜 파장을 일으켰다.




정수라 '모그룹회장 애첩설'

가수 정수라가 대기업의 모회장 아이를 출산했다는 소문도 수십년간 꼬리를 물었다.

정수라는 초등학교 4학년때 CM송 '종소리'로 노래를 시작했지만 스무살 때인 83년 '아! 대한민국'이 히트하며 유명세를 탔다. 제5공화국 시절 가수들의 앨범에 의무적으로 집어넣은 건전가요가 상업적으로 성공한 특이한 사례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정수라는 이 노래를 시작으로 밝고 힘찬 목소리의 히트곡을 잇달아 내며 80년대를 풍미했다. 안타깝게도 인기 절정이던 이 무렵 '대기업 회장과의 염문설'이 등장했다.

염문설은 출산설, 상속설에 이어 '쌍둥이를 낳았다' '아들을 낳고 거액을 상속받았다' '딸을 낳는 바람에 버림받았다' '병원과 백화점을 받았다' 등의 구체적인 내용으로 확산 유포됐다.

정수라는 2년전 결혼과 함께 자신을 둘러싼 괴소문들에 대해 직접 해명했다. 그녀는 "처음에는 화가 났다. 그런데 싸워서 풀 수도 없었다. 진실을 말해도 대중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그녀는 또 "무대에 올라 관객들의 눈빛을 보면 노래는 안 듣고 그 얘기만 하는 것 같았다"면서 "그래서 요즘엔 아예 공연을 한 후 반농담으로 진실을 알려주면서 궁금증을 풀어준다"고 말했다.

연예인들을 괴롭힌 악소문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침묵하면 더욱 기승을 부린다는 사실이다. 10여년전까지만 해도 연예인들은 자신을 둘러싼 소문을 무시하려는 경향이 짙었다. 해명해봐야 믿어주지 않을 뿐더러 몰랐던 사람들까지 더 관심을 갖게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최근 들어 연예인들은 조금만 사실과 다른 소문이 나돌아도 적극 법적대응에 나서는 분위기다. 이들이 뒤늦게나마 직접 해명에 나선 건 이런 추세와도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이들의 '과거'가 사실무근으로 확인됐더라도 깊게 패인 상처는 당사자에게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아픔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