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빌린 액수는 5억여 원인데 2년여에 걸쳐 개인 사채피해액 사상 최고라는 약 80억 원을 상환했지만, 아직도 이자상환 요구에 시달린다는 피해자가 나타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검찰에 이러한 내용을 고발한 사람은 의약분업 전 1일 매출 8000만 원대를 자랑하며 제약업계에 영향력을 갖고 있던 유명 약국 경영주 박 모씨. 불과 수년 만에 알거지가 돼 기획사채의 무서움을 일깨워 주는 대표적인 실제 사례로 등장했다.

종로5가에서 20여년간 K약국을 경영해온 약사 박 모씨는 2006년 12월에 월 3부 이자로 사채업자 C 모씨에게 1억원을 빌린 후 2009년 초까지 실미만 해도 무려 76억원을 지불했지만, 아직 원리금이 해결되지 않았으니 상환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는 처지라고 밝혔다. 아무리 갚아도 원래 제자리로 돌아오는 ‘도돌이표’ 같은 사채시장의 덫에 당한 케이스로 보인다.

다음은 최근 검찰에 고소장을 접수시킨 후 밝힌 피해 내용이다. 박씨는 2005년 초 교통사고를 당해 2년여 간 약국 경영이 허술해지고 때마침 직원이 영양제 수액제를 의사 처방없이 판매하는 바람에 법정에 서게 됐고, 10억원대의 불의의 피해가 발생하면서 긴급 자금이 필요했다.

당시만 해도 종로 K약국은 하루 천만 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약국. 업계의 큰 손이었던 박씨는 50억 원대의 부동산과 저축을 보유하고 있었다. 워낙 급했던 박씨는 고등학교 동창생들과 친분이 있던 사채업자 C 모씨에게 5억원을 빌렸다. 몇 달만 쓰고 갚으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으로 사채를 쓴 것이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다.

부동산을 급매 처분하기 싫어 이자가 비싸더라고 한 두 달만 쓰겠다라는 생각은 큰 착각이었다. 이것이 황당할 정도로 믿기 어려운 기획사채에 휘말려 전 재산을 날리고도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사건의 시작이 될 줄은 박씨는 꿈에도 몰랐다.

몇 달 후(07년 3월말) 돈이 더 필요해져 1억 5000만원을 추가 융통할 때는 이자가 월 3000만원(연 156%)을 훌쩍 넘어버렸고,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2007년 4월 받을 어음이 부도나 자금압박이 발생하면서 2억 7000만원을 더 빌리고는 이자를 월 6250만원(연 166%)을 내게 됐다고 밝혔다.

총 빌린 금액은 3차례에 걸쳐 총 5억2000만원이었는데, 돈은 만져보지도 못하고 원금에 얹혀진 빚만 20억원이 훌쩍 넘어섰고 이자가 최고 연 1000%가 넘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초고금리를 아무리 장사가 잘되는 사업자라 해도 감당하기 쉬운 일이 아니다. 웬만한 개인이면 벌써 자빠졌을 테지만 박씨는 약품업계에서 쌓아온 신용과 체면 때문에 밀린 이자를 내기 위해 또 추가 대여를 받는 식으로 이리저리 돌려 막다 보니 결국 76억 원이란 거액을 상환했다는 것이다.
재산이 거덜났지만 원금은 아직도 그대로여서 상환 요구에 시달리고 있다는 게 박씨가 고소장에서 주장한 내용이다.

한편, 사채를 빌려준 C 모씨는 자신이 편취한 게 아니라 박 모씨의 모친에게 다 넘어갔다며 고소한 상태여서 사건이 어떻게 진전될지는 미지수다.

다행히 박씨는 모든 송금을 은행 계좌로만 입금시켜 명확한 근거를 갖고 있어서 법적인 입증과 처리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박씨 사건은 고리 사채에 의한 최대 피해사례로 알려지고 있는데, 사채 전문가들 사이에선 박씨가 ‘꺾기’, ‘업어가기’, ‘알까기’, ‘부풀리기’, ‘되돌이표 수법’ 등 사채시장에서 은밀하게 통용되는 각종 채무자 옥죄기 수법이 총동원된 악성수법에 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꺾기'는 연체된 이자 꺾기, 축적된 이자꺾기 등이 있는데 이자납입이 연체되면 금전거래 없이 명목상 빚 원금에 이자와 원금을 빌려준 것으로 하고 갚게 하는 수법으로 이율은 원래의 최소 3배 이상이다.
'업어가기'는 빚내서 빚 갚게 하는 방식인데, 모인 이자를 다시 더 고리의 이자로 대출해주어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하는 수법이다.
'알까기'는 단기간 고리(월 5할, 10할)의 이자를 모아 다시 대출해 초고리(10일에 1할)를 받는 지옥 같은 수법.
'부풀리기'는 여러 개의 계정을 만들어 대출금 원금 주인이 수십명이 되는 것처럼 위장해 채무자를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수법이다.

이 가운데 업어가기 고리사채 방식은 60년대까지 사용됐으나, 피해 강도가 너무 커서 수십년간 업자들도 사용하지 않던 방식인데 다시 등장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잠깐의 판단실수가 헤어날 수 없는 사채의 늪에 빠져 평생 모든 재산과 신용을 송두리째 앗아갈 수 있으므로 사채에 대한 경각심을 늦춰서는 안 된다고 전문가들을 말하고 있다. / 이득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