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재·축구평론가·경기영어마을 사무총장

눈을 감고 한참을 빌다 시계를 봤다. 3분밖에 흐르지 않았다. 끝나라, 제발 이대로 끝나라. 두 번의 환호, 두 번의 장탄식. 그리고 기쁨과 환희의 눈물로 마무리한 처절한 일전(一戰)이었다. 0―1로 뒤지던 전반 중반에 나이지리아가 날린 회심의 직선 강타가 골포스트에 맞지 않고 손바닥만큼만 더 안쪽으로 향했더라면 우리의 월드컵 16강 꿈은 거기서 끝났을지 모른다. 2―2로 살얼음판을 걷던 후반 막판 나이지리아의 파상 공세에 추가 실점 없이 버틴 건 운수 30%에 실력이 70%였을 것이다.

1986년부터 7회 연속 본선에 나서는 동안 대한민국은 수없이 흔들리고 비틀거렸다. 상대 공격수가 설렁설렁 움직여도 우리 수비수는 90분 내내 허덕거리며 따라붙어야 했다. 거듭된 패전의 아픔이 경험이라는 자산으로 우리 안에 녹아 있는 줄을 이번에야 알았다. 역대 대한민국 대표팀의 비장한 월드컵 역사와 희생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

이제는 외나무다리의 혈투, 16강전이다. '원조 붉은 악마'의 탄생 무대인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8강전 상대가 바로 우루과이였다. 한국은 후반 9분 신연호가 골키퍼와 맞선 상황에서 땅볼 슛을 우겨넣어 1-0 리드를 잡았다. 후반 26분 동점골을 허용한 한국은 우루과이의 파상 공세에 형편없이 밀리다가 연장전에서 단 한 번의 반격 찬스를 맞았다. 김종부의 패스를 받은 신연호가 또 득점하며 2대1 승리. 이것이 그 유명한 청소년선수권 4강 신화였다. 1980년대 한국 축구의 가장 빛나는 이정표였다.

한국의 90년 월드컵 조별리그 마지막 상대도 우루과이였다. 우루과이는 골대만 세 번 때리는 불운에 시달리다 후반 추가시간에 폰세카의 헤딩골로 사지(死地)를 탈출한다. 우리 수비수끼리 "오프사이드 트랩!"이라고 외치는 걸 알아듣고 반 박자 늦게 수비진 뒤를 돌아들어 와 쉽게 득점에 성공했다. 우루과이가 월드컵에서 20년 만에 거둔 승리의 희생자가 유감스럽게도 한국이었던 것이다.

역사는 돌고 돈다. 그렇다면 이번엔 한국이 다시 이길 차례다. 2010년 월드컵에서 B조 세 경기를 치르며 한국은 몇 차례나 '용궁'에 갔다 왔다. 그만큼 대한민국은 물이 올랐다. 우루과이가 1990년의 달콤함을 다시 맛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번에는 사지 탈출도, 오프사이드 트랩을 깨는 기쁨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대표팀은 우루과이보다 며칠 더 아프리카에 머무를 계획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