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천재가 '범재'가 됐다가 다시 천재가 돌아오는 데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23일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역전골을 터뜨린 박주영은 한때 한국 축구의 희망이었다가, 비판 대상이 됐다가, 다시 한국 축구의 아이콘이 됐다. 2005년 U-20(20세 이하) 월드컵 나이지리아전에서 그랬듯 이번에도 골망을 가른 것은 날카로운 프리킥이었다.

박주영은 후반 3분 페널티박스 왼쪽 지점에서 얻어낸 프리킥 찬스에서 그림 같은 킥으로 역전골을 꽂아 넣었다. 지난 아르헨티나전에서 기록한 자책골의 부담을 훌훌 털어버리고 대표팀의 주전 공격수로 이름값을 톡톡히 해낸 한 방이었다.

박주영은 1985년 7월 10일 대구 출생으로, 1m82㎝에 76㎏의 좋은 신체조건을 가지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던 박주영은 부모의 반대 때문에 몰래 축구부에 들어간 황소고집이었다. 부모에 들키지 않으려고 축구 훈련을 한 뒤에 다시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귀가했다고 한다. 축구에 대한 의지는 아무도 말릴 수 없을 정도였다.

학생 선수 시절의 박주영은 보기 드물 정도로 영리하게 공을 찼다. 특히 청구고 시절엔 상대 수비수에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의 공격적인 능력은 2005년 국내 프로 K리그 FC서울에 입단하면서 꽃을 피웠다. 유연한 드리블, 번개같은 돌파력, 반 박자 빠른 패스와 슈팅 타이밍은 이전의 한국 공격수들과 차원이 달랐다. 축구팬들은 "한국에 새로운 형태의 스트라이커가 나타났다"고 흥분했다.

박주영이 프로 첫해에 30경기 18골을 기록하고, 그해 6월 국가대표팀 데뷔전에서 첫 골까지 터뜨리자 사회적으로 '박주영 신드롬'이 일어날 정도였다. 그는 21세인 2006년에 국가대표팀 공격수로 독일월드컵에 출전하는 영광도 안았다.

그러나 독일 월드컵은 승승장구하던 박주영에게 시련의 시간이었다. 조재진 안정환 설기현 이천수 등 쟁쟁한 선배들에 밀려 1,2차전에는 운동장도 밟아보지 못했다. 박주영은 3차전인 스위스전에 선발로 나섰지만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하고 후반 21분에 교체로 물러났다. 한국은 스위스전에서 0대2로 패하며 16강 진출에도 실패했다.

박주영은 2008년에 프랑스리그 AS모나코로 진출하면서 축구인생의 전환기를 맞았다. 거친 유럽 수비수들과 경쟁하면서 골잡이로서 능력을 날카롭게 가다듬었다. 지난해 말부터는 체력 훈련에 집중하면서 육체적으로도 강인해졌다. 그의 에이전트인 이동엽 텐플러스 대표는 "지속적인 트레이닝으로 91㎝였던 서전트 점프(제자리높이뛰기)가 최소 5㎝는 올라갔을 것"이라고 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박주영의 성격은 몹시 내성적이다. 그는 '언론 기피증'이 있다고 해도 될 만큼 인터뷰 요청에 질색한다. 심지어 허정무 감독이 나서 "대표 선수라면 너무 언론을 기피해선 안된다"고 조언했을 정도다.

그러나 선수들 사이에서는 아주 밝고 쾌활한 사람으로 변한다. 박주영은 "나는 축구가 즐거워서 할 뿐이다. 재미없어지면 축구를 그만둘 것"이라고 거침없이 말하는 신세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남아공월드컵에서 축구의 재미에 흠뻑 빠진 박주영이 당분간 '축구를 그만둘' 일은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