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가 9일 "세종시 수정안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 국민과 충청도민의 뜻을 존중해 합리적 방향으로 해결하겠다"고 말해 여권이 퇴로를 본격적으로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세종시 문제가 정치권의 갈등을 넘어 국론분열의 중요한 요인이 됐다. 문제제기의 출발이 아무리 옳은 뜻이었다고 해도 국민들께서 쉽게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 같이 말했다. 특히 그는 "국민을 이기겠다는 정치세력은 결국 실패했다"며 "민심의 소재가 정확하게 어디 있는지 살피면서, 그동안 논란이 되어온 주요 국정과제 추진은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추도록 노력하겠다"고도 했다.

정운찬 국무총리(맨 앞줄)를 비롯한 장관들이 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경청하고 있다.

6·2 지방선거에서 충청권 시·도지사가 '전멸'하는 등 악화된 민심이 증명된 만큼 세종시 수정을 계속 추진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여권의 핵심관계자들은 선거 전에만 해도 "충청권에서 한두석 이기면 여론이 좋아질 것" "수정에 찬성하는 충청민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며 수정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했지만, 선거 결과는 정반대였다. 더 이상 수정을 추진할 힘이 사라진 상태에서 국회에 계류 중인 세종시 수정법안을 무작정 놔두기도 힘들다. 이 때문에 수정법안을 해당 상임위에 상정해 논의하면서 정부가 또 다른 α(알파)를 내놓은 뒤 이를 표결에 넘겨 수정안의 '생사'를 결정하는 출구전략을 구상 중인 것으로 보인다.

친이 주류인 정태근 의원이 이날 언론 인터뷰 등에서 "세종시 수정안을 관철시킬 동력이 떨어진 게 사실이다. 국회의원 모두가 모이는 전원위원회를 열어 앞으로 어떻게 처리할지를 논의했으면 한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보인다.

주류 핵심인 정두언 의원도 최근 "더 이상 미루지 말고 (되든 안 되든) 국회 처리절차를 밟아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었다.

국회 처리절차를 진행한다는 것은 세종시 수정안을 포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세종시 수정과 관련된 법안을 처리할 상임위는 국토해양위와 세종시 지원 관련 세법을 처리해야 하는 기획재정위인데, 수정안에 반대하는 상임위원들이 더 많다. 국토해양위의 경우, 수정안에 반대하는 친박계 의원들이 8명이나 돼 31명의 상임위원 가운데 반대파가 21명으로 3분의 2가 넘는다. 상임위원장도 친박계인 송광호 의원이다.

한나라당은 상임위 논의 절차를 진행하기 전에 세종시 수정안으로의 당론 변경절차도 거쳐야 한다. 당론변경을 위해서는 소속 의원 168명 가운데 3분의 2가 넘는 113명이 찬성해야 한다. 그러나 친박계 의원들이 60명쯤 되기 때문에 당론 변경도 쉽지 않다.

정태근 의원은 이를 의식한 듯 "수정안이 부결되더라도 전원위원회를 열어 왜 세종시 문제가 제기됐는지를 검토·토론해 역사의 기록에 남겼으면 한다"고 했다.

그러나 정책의 방향성은 옳다고 주장하면서 세종시를 스스로 포기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한 핵심 친이계 의원은 "과반의석이 훨씬 넘는 여당이 친이계와 친박계의 의견차이로 한국의 미래를 좌우할 세종시 문제를 무기력하게 내팽개치는데 대해서는 보수층의 반발이 있을 것"이라며 "여론을 돌리기 위한 노력을 끝까지 하는 것이 옳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