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장성급회담 북측 단장이 26일 우리측의 심리전 방송 재개시 '개성공단 차단 조치'를 하겠다고 공언함에 따라 개성공단이 북한 대남 협박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25일 밤 조평통(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남북관계 단절이 1단계라면 개성공단 폐쇄는 2단계 협박이 될 것 같다"(안보 부서 당국자)는 관측이다. 우리 정부는 대규모 인질사태를 우려하며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개성공단, 대남 협박 핵심

개성공단 폐쇄는 남북 모두에게 '뜨거운 감자'다. 공단이 폐쇄될 경우 북한은 이곳에서 일하는 4만2000여명에 달하는 근로자 생계를 책임질 여력이 없다. 특별한 이유 없이 먼저 폐쇄하면 북한이 절실한 외자(外資) 유치는 더 어려워지고, 중국도 북한 편만 들기 힘들다. 우리측도 수백명의 국민을 북측 제지 없이 안전하게 철수시킬 방법이 마땅치 않다. 일부 입주기업 관계자는 '끝까지 남겠다'고 할 가능성이 있다. 남한 내 비판 여론도 예상된다.

北, 남북경협사무소 직원 전원 추방… 26일 북한이 추방한 개성공단 내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 이수영 사무소장(가운데)이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입경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북한은 이날 8명의 사무소 직원 전원을 추방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공을 우리 쪽으로 넘겼다. 대북 심리전 방송을 '군사 도발'로 규정한 뒤 이를 빌미로 개성공단 출입을 차단하겠다고 예고한 것이다. "빈말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만큼 심리전 재개시 정말 개성공단 길을 끊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 정부도 물러서기가 쉽지 않다. 정부 당국자는 "전 국민 앞에서 심리전 재개 방침을 밝혔는데 북한 위협 한마디에 꼬리를 내릴 수 있겠느냐"고 했다. 정부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고 있다. 김태영 국방부 장관이 지난 25일 청와대 국민원로 회의 중 펴놓은 메모를 찍은 사진을 보면 '개성공단 인질사태에 대한 방안 강구, 소규모 인질시, 대규모 인질시:공중 ○○통제(39˚안), 미 전력 대규모 전개 要'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소규모 인질시'에 대해선 별다른 언급이 없다. 반면 '대규모 인질시'에는 "평양 근처인 위도 39도까지 제공권을 확보하고, 대규모 미군 전력을 한반도 주변에 배치해 북한을 압박한다는 의미인 것 같다"(군 관계자)는 해석이 나온다. 우리측은 심리전 방송을 2주일쯤 뒤에 시작할 계획이다. 대북 전단(삐라)은 이르면 27일 날려보낼 수 있다.

북한은 미국의 금융 제재나 국제사회의 추가 제재에 대해서도 대응할 것이란 관측이다. 북한은 2005년 9월 마카오 BDA(방코델타아시아)은행에 있던 김정일 위원장의 돈 2500만달러가 동결되자 2006년 7월 장거리미사일 발사, 그해 10월 1차 핵실험 등으로 맞섰다.

DMZ(비무장지대)나 서해 NLL(북방한계선)에서의 충돌 가능성도 우려된다. 조선중앙통신 '군사논평원'은 25일 밤 "우리 공화국에 정치적이든, 군사적이든, 경제적이든 그 어떤 사소한 도발 움직임이라도 보인다면 즉시 섬멸전으로 대답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는 '말 대 말' 대결 국면이지만 인명이 관련된 '행동 대 행동'의 돌발 충돌이 일어난다면 한반도 긴장은 차원이 달라진다.

북한의 맞불 작전

정부 소식통은 이날 "최근 북한 잠수함 4척이 동해에서 사라진 것은 우리가 예고한 한·미 연합군의 대잠(對潛)훈련 등에 대한 '맞불' 조치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측의 개성공단 내 경협사무소 폐쇄는 우리측의 개성공단 인원 축소, 북측의 통신 단절은 우리측의 방북 금지, 북측의 항공기 통과 금지는 우리측의 선박 운항 금지 등에 대한 맞대응이란 분석이다. 최근 북한이 말한 것들을 곧바로 실천으로 옮기고 있는 대목은 심상치 않다.

반면 "개성공단을 제외하면 북한도 카드가 마땅치 않은 것 같다"(조영기 고려대 교수)는 관측이 나온다. 이날 북한은 판문점 및 해사당국간 통신망을 잘랐지만 남북 교류가 이미 중단된 상태이기 때문에 실제 효과는 없다. 개성공단 내 경협사무소도 개점 휴업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