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두식 논설위원

민주당은 요즘 "천안함 사건을 선거에 이용하지 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야당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6·2 지방선거에서 여당 후보들과 경쟁하는 게 아니라, 북풍(北風·북한 변수)에 맞서 싸우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다.

흔히 보수 정당은 안보 문제에서, 진보 정당은 복지 분야에서 강세를 보인다고들 한다. 이것은 다른 나라에서도 받아들여지는 통념(通念)에 가깝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가령 2008년 미국 대선에선 이런 통념과 정반대되는 일이 벌어졌다. 안보 이슈에 강하다는 공화당은 베트남 전쟁의 영웅 존 매케인 상원의원을 후보로 내세웠고, '안보 문제에 유약(柔弱)하다'는 비난에 시달려온 민주당 후보는 외교·안보 분야 경험이 거의 없는 오바마 현 대통령이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이라크 두 곳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었고, 당연히 선거 최대 쟁점도 '전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평소 안보 문제에서 약점을 드러내 온 정당의 정치 신인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선거를 통해 부시 대통령의 '일방주의'에서 오바마가 내세운 '다자주의'로 외교·안보 정책의 기조를 바꾼 것이다. 오바마와 민주당이 자신들에게 취약한 분야로 여겨져 온 안보 이슈를 피해가지 않고 정면으로 다룬 결과이기도 하다.

천안함 사건이 터진 것은 지방선거를 두달여 앞둔 지난 3월 26일이었다. 대한민국의 1200t급 군함이 우리 영해(領海)에서 둘로 쪼개져 침몰했고, 그 와중에 46명의 장병이 목숨을 잃은 천안함 참사(慘事)가 어떤 형태로든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점은 누가 봐도 자명한 사실이다. 야당으로선 군(軍)을 포함한 현 정부의 외교·안보 시스템 전반을 들여다보면서, 야당이 적극적으로 사태 해결의 대안(代案)을 내놓아 국민의 시선을 야당 쪽으로 끌어오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야당은 처음부터 이 문제를 직시(直視)하기를 두려워하는 듯했다. 천안함 합동조사단에 민주당 추천으로 들어간 사람은 공식 회의엔 딱 한 번 참석하더니 방송 인터뷰와 인터넷을 통해 온갖 음모론을 퍼뜨리고 다녔다. 이 사람의 행적이 문제가 되자 민주당 지도부가 "도대체 누가 추천한 거냐"고 되묻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민주당은 천안함 사태가 몰고올 북풍을 미리 겁부터 냈을 뿐, 북풍의 방향을 바꾸고 크기와 강도(强度)를 조절할 만한 능력을 보여주진 못했다. 그 결과 야당은 사실(事實)을 놓고 다투고, 사실에 입각해 토론을 벌이는 공론(公論)의 무대에서 스스로 퇴장해 버린 모양이 됐다. 대신 음습한 인터넷의 골방들을 기웃거렸다.

어느 사회에서든 국가적 비극이나 큰 사건이 벌어지면, 다수가 동의하는 주류 여론이 만들어지고 끝내 여기에 몸을 싣지 않는 소수 비주류의 의견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한국에는 스스로 전문가연 하는 인터넷 '골방 도사'들도 많고, 사실 관계보다는 '우리 편'과 '상대 편' 중 어느 쪽에 유리한가부터 먼저 따지는 진영(陣營)의 논리가 지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토양 위에서 천안함 침몰을 놓고 '미군 오폭설' '조작설' 같은 음모론이 번져갔다.

야당이 소수 의견에 귀를 열어놓고, 정부 발표와 정책에 의문을 제기하고 비판하는 것은 야당이 해야 할 일 중 하나다. 그러나 여기에만 매달려 야당 스스로 발등을 찍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한 야당 인사는 조사단이 천안함을 공격한 어뢰의 추진체를 찾아내 공개하는 장면을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고 했다.

야당이 걱정하는 것처럼 북풍이 지방선거에 큰 영향을 미칠지는 당장 예측하기 어렵다. 사실 천안함 사태가 야당에게 꼭 불리한 소재도 아니었다. 민주당이 과학적·객관적 사실을 진지하게 찾아가면서 정부·여당보다 훨씬 더 현실적인 방안들을 내놓고 경쟁했더라면 지금 같은 옹색한 처지에 빠지진 않았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야당 스스로 불리한 방향으로 북풍을 키워온 셈이다. 북한 문제도 보수와 진보의 논리가 서로 견제하고 경쟁하는 게 바람직하다. 설령 선거 결과가 야당에 불리하게 나오더라도 그 이유를 '북풍 탓'으로만 돌리지 않았으면 싶다. 그보다는 북한 문제에 대한 야당의 논리와 주장을 다시 점검하는 일이 시급하다. 북한 관련 공론장(公論場)을 이끌 논리의 한 축을 다시 세우는 일도 야당의 중요한 책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