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당시 미국으로 유출됐던 명성황후의 표범 카펫이 1951~1952년 주미 한국대사관을 통해 반환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문화재청 산하 고궁박물관 등 정부 소장처 어디에도 이 유물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당국이 사실 확인 작업에 착수했다.

5월 13일 외교부는 주간조선으로부터 표범 카펫을 미국으로부터 반환받은 건과 관련된 질문을 받고 주미 대사관에 일명 ‘명성황후 표범 카펫’이 존재했었는지 여부와 국내로 반환된 사실이 있는지를 확인 중에 있다고 밝혔다. 고궁박물관 등 문화재 관리당국에 따르면 현재 이 카펫은 국내 반입되거나 관계 기관이 소장하고 있다는 기록이 없어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명성황후 표범 카펫이 미국으로 유출됐다는 사실은 경술국치 100년을 맞은 올해 한 시민단체가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관련된 유품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불교계 시민단체인 ‘문화재제자리찾기’(사무총장 혜문스님)는 최근 명성황후 시해에 사용된 칼인 ‘히젠토(肥前刀)’를 일본 후쿠오카에 있는 구시다 신사로부터 환수하기 위한 운동을 벌여 왔다. 히젠토 환수위원회는 일본 신사 측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입장에 서기 위해 명성황후 관련 자료를 면밀하게 검토하는 과정에서 명성황후 표범 카펫에 관한 내용을 보도한 미국 라이프(LIFE)지 기사를 발견했다.

1951년 8월 20일자 미국 라이프지는 ‘병장의 기념품’이라는 큰 제목 아래 ‘48마리의 표범가죽으로 만든 카펫이 군용백에 담긴 채 미국으로 전달됐다(A 48-pelt leopard rug, stuffed in a duffel bag, arrives from korea and the result is an incident)’는 부제를 달아 명성황후 카펫 기사를 보도했다. 기사에는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크고 아름다운 표범가죽 카펫 사진이 함께 실려 있다.

1951년 6월 한국전쟁에 참전한 아들 에브론으로부터 표범 카펫을 넘겨 받은 길트너 여사가 미 세관당국의 압류절차에 앞서 촬영한 사진. 출처=photo 라이프지

라이프지 기사 등이 전하는 명성황후 표범 카펫의 운명은 명성황후만큼이나 기구하다. 이 카펫은 1951년 6월 16일 미국땅으로 건너갔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미군 에브론 길트너가 서울의 한 고미술상을 통해 당시 25달러를 주고 사들인 뒤 모국으로 보낸 것이다.

에브론 길트너 병장은 당시 이 카펫을 구입하고 나서 약 3개월 뒤 미국 콜로라도주에 사는 부모에게 보냈다. 당시 미국 언론에 따르면 모피를 받아든 에브론 병장의 부모는 표범 48마리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이 카펫이 값진 물건이라고 판단하고 팔려고 내놨다.

미국 언론을 통해 ‘한국 명성황후의 유물인 값비싼 표범 카펫이 미국에 있다’는 내용이 알려진 뒤 현지 한국 공관은 미국 정부에 카펫 반환을 요구했다. 당시 뉴욕타임스 역시 뉴욕 총영사였던 데이비드 남궁(남궁염)이 “값을 매길 수 없는 이 보물에 굳이 가격을 매긴다면 아마도 10만달러의 가치는 될 것”이라고 말했다며 이 명성황후 카펫을 제법 큰 화제성 기사로 다루기도 했다.

이후 한국 대사관의 요구를 수용한 미국 정부는 콜로라도주 덴버의 세관을 통해 에브론 병장의 부모가 갖고 있던 표범 카펙을 압수하고 1952년 8월부터 1953년 2월 사이에 한국 대사관에 돌려준 것으로 미국 국가기록물 보관부(US National Archives & Records Administration)의 공식문서(전후 보상 목록) 등에 기록돼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 정부는 이 카펫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 문화재청 측은 “표범 가죽으로 만든 황실 카펫에 관한 기록은 찾을 수 없다”고 밝혔다. 미국에선 한국 대사관에 반환된 기록이 있지만 국내에선 이를 접수한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카펫을 본국으로 들여온 뒤 외교부가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거나 현지 대사관이 적법하게 처리하지 않았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문화재제자리찾기 측은 “문화재 당국에 관련 내용을 확인했으나 기록이 없다는 회신을 받았고 주미 대사관에 직접 정보공개청구를 요청해 놓은 상태”라며 “이 중요한 문화재가 반환된 뒤 어디론가 사라졌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명성황후의 카펫 찾기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 단체는 18일 오후 3시 인사동 물파공간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관련 내용을 언론에 전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