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의 합참의장이 지난 10일 합참 간부들의 정신교육 자리에서 "우리 군(軍)이 대청해전이라는 조그마한 승리에 도취해 적의 전술적 변화를 미처 감지하지 못했다. 천안함이 피습당한 날을 국군 치욕의 날로 인식하고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면서 "천안함 사고의 가장 큰 책임은 의장에게 있다"고 말했다. 이 의장 말이 백번 옳다.

해군은 작년 11월 10일 NLL을 넘어와 선제공격을 해온 북한 경비정에 4950발의 함포를 쏘아 패퇴(敗退)시켰다. 북한은 그 패배를 설욕하겠다며 올 1월 '보복 성전(聖戰)'을 공언하고 NLL 해상으로 해안포를 쏘아대는 예사롭지 않은 움직임을 보였다. 북한 해군은 노후 전함과 자동화·전자화되지 못한 화력(火力) 시스템 때문에 정규 해전에선 우리 상대가 안 된다는 사실이 몇 차례 교전(交戰)에서 확인됐다. 그렇다면 북한이 떠들어온 '보복 성전'은 잠수함·특수부대 등의 비대칭(非對稱) 전력을 동원한 기습이라고 보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합참은 이 상식을 놓쳤다.

합참과 합참의장은 지상·해상·공중·상륙작전의 모든 전투부대를 지휘하는 군 작전 최고 본부이고 최고 책임자다. 천안함 사건 발생 직후 국민이 그 무엇보다 충격을 받은 것은 24시간 내내 1분 대기 개념으로 전 군에서 벌어지는 비상상황을 장악하고 있어야 할 합참의장이 천안함 폭침(爆沈)이란 초비상 사태를 49분이나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사태 앞에서 국민은 등골이 오싹했다. 이 의장은 "가장 큰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했다.

적대 세력의 포악(暴惡) 무도(無道)한 기습공격을 당한 피해자에게 책임 추궁을 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시각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 군의 초긴급(超緊急) 과제는 군의 작전·조직·비상대처능력과 군기(軍紀)상의 문제점을 최단 시일 내에 혁신해 천안함 사건의 재발 가능성을 완벽하게 봉쇄하는 것이다. 이 국가적 비상 과제의 중심에 서 있어야 할 사람이 합참의장이다. 위기의 조직을 일으켜 세우는 선두에 서려면 무엇보다 그 자신이 조직 내에서 신망이 두텁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야 동료들의 진심 어린 뒷받침을 받고, 그래야 그가 가리키는 길을 후배들이 군말 없이 따라준다. 스스로 '가장 큰 책임이 나에게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비상시의 비상대책 수립을 이끌어가겠다고 할 때 그 일이 순탄하게 진행되겠는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군인의 길은 나를 죽여 조직을 살리는 무인(武人)의 길이고, 군은 스스로를 던져 국가를 구(救)하는 조직이다. 더구나 지금 국가 안보와 군의 신망이 백척간두에 걸려 있다. 이 의장은 자신이 군인의 길을 걷기 시작할 때부터 가슴에 담아왔을 위국헌신(爲國獻身) 군인본분(軍人本分)이라는 여덟 글자 앞에서 거취(去就)의 결단을 내려 군 개혁의 물꼬를 터주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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