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채민양은 본지 취재에서“당시 남이 써준 대로 (촛불집회에서) 글을 읽었다”며“양심의 가책을 느낀다”고 말했다.

"(촛불문화제 무대에) 10여 차례 올라갔어요. 제 스스로 무대에 선 건 한두 번밖에 안 돼요. (무대 위 발언내용은) 다 단체('나눔문화')에서 써준 거예요. 읽으라니까 읽고 별생각 없이…."

2008년 5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가 전국 곳곳에서 펼쳐졌다. 시위대 속에는 당시 경기도 A고 2년생이던 한채민(19)양도 있었다. 한양은 2008년 5월 28일 서울 청계천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서 애잔한 바이올린 연주음악과 함께 '눈물비가 내립니다'라는 편지를 읽었다.

"저는 촛불소녀 한채민입니다. 5월 3일 처음 이곳에 나와 오늘까지 14번째 참석했습니다. 오늘 비가 내렸습니다. 제 마음에도 눈물비가 내립니다. 저희 촛불소녀들과 함께 이곳에서 울고 웃고 노래하던 언니, 오빠, 어른들이 많이 연행됐습니다. 강제연행된 분들은 제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한양은 당시 사회문제를 고민하는 '성숙한 촛불소녀'로 유명세를 탔다.

한양은 "2008년 5월 초 중간고사를 끝내고 구경 삼아 시위에 갔다가 동갑내기 여고생이 발언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아 이후 3개월 동안 빠짐없이 시위에 참가했다"고 했다. 한양의 발언은 집회 참가자들 가슴을 울렸고, 좌파 단체와 매체들은 시위 참여를 독려하는 데 한양의 존재를 최대한 활용했다.

지난 3일 만난 한양은 "양심에 가책을 많이 느꼈다"고 털어놨다. 현재 일본유학을 준비 중인 한양은 "무대 위에 올라 읽었던 편지 내용은 전부 내가 쓴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나눔문화라는 단체에서 써줬고 시킨 그대로 했을 뿐"이라고 했다. 나눔문화는 '촛불소녀' 캐릭터를 만드는 등 촛불시위 때 활약한 좌파 성향의 시민단체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너무 커졌어요. 그 순간에는 멍해서 아무것도 못 느꼈는데…."

2008년 5월 7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촛불 문화제에 참가한 한 여학생이‘저 아직 15년밖에 못 살았어요’란 피켓을 들고 있다.

당시 한양은 무대에서 정치적 내용의 글을 자주 읽어 더 호응을 받았다. 한양은 2008년 5월 22일 촛불문화제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TV에 나와 괴담 때문에 철없는 학생들이 나온다며 걱정하는데 우리 부모님은 나보다 대통령을 더 걱정한다. 우리는 투표권도 없다. 우리가 뽑지도 않았는데 왜 대통령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힘들고 가슴 아파야 하나"라고 발언했다.

한양은 이것도 "처음부터 (나눔문화에서) 다 써준 것"이라고 말했다. 한양은 당시 '촛불소녀'라고 소개됐던 다른 여학생들에 대해서도 "자발적으로 나온 학생도 있었지만, 나눔문화에서 다듬어주고, 다른 단체와 연계하는 여고생들도 많았다"며 "그런 학생들이 절반 정도는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양은 '광우병의 진실'에 대해선 여전히 무지(無知)한 상태였다. 광우병 걸린 쇠고기가 생리대며 분유 등에도 들어간다는 당시의 잘못된 얘기나, 미국 사람들은 30개월 미만 쇠고기만 먹는다는 오해(편집자=실제로는 미국인도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연간 600만마리 이상을 소비함)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늘어나고 있는 데 대해서도 "평소부터 정말 궁금해하던 것"이라며 "누가 좀 (사실을) 알려줬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한양은 여전히 '광우병 쇠고기'를 의심했고, 정부에 대한 불신을 품고 있었다.

"미국 쇠고기를 먹으면 뇌에 구멍이 뚫려 죽는다는 말이 괜히 나돌 리는 없다고도 생각해요."

한양은 "괴담의 진위 여부를 떠나서 정부의 대처 방식에 불만이 있었다"며 "옳지 못하다고 생각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또다시 촛불시위에 나가겠다"고 했다.

2년 전 "동방신기(아이돌그룹) 오빠들이 광우병 때문에 죽는다"고 울부짖으며 촛불시위에 나갔던 여학생 중 일부는 아직도 광우병 괴담을 믿고 있었다. 취재팀의 취재에서 이들은 대부분 왜곡된 정보를 제공하는 일부 언론과 그 자료를 퍼나르는 인터넷에서 근거를 댔다.

중3 때 촛불시위에 참가했던 서울 S고 2년 정은진(17)양은 "광우병 성분은 생리대나 분유에도 들어가는 걸로 알고 있다"며 잘못된 정보를 사실로 알고 있었다. 정양은 그러면서 "일회용 생리대는 가급적 안 쓰고 면 생리대로 대체하려 한다"고 말했다.

정양은 "2년 전부터 쇠고기를 한 점도 안 먹고 있고 학교에서 급식으로 쇠고기가 나오면 아예 식사를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잘못된 정보로 확신이 굳어진 학생들은 적지 않았다. 고등학교 3년 유선경(18)양은 "촛불을 통해 누구보다 정치에 대해 잘 배웠다. 청소년은 절대 무지몽매하지 않다고 어른들에게 꼭 말씀드리고 싶다"고 했다.

지금은 대학 1학년이 된 김아현(19·M대 역사학과)씨는 "쇠고기 자체에 대한 불신보다는 검역 자체가 허술하니까 걱정되는 것"이라고 했다. 김씨는 "정부가 처음엔 '무조건 괜찮다. 먹어라'고 하다가 허겁지겁 근거자료를 준비하는 식이었다"며 정부에 불신을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상당수는 시중에서 파는 쇠고기가 들어간 음식을 먹고 있다고 했다. 당시 고2였던 정소희(19·C대 체육학과 1년)양은 "어쩔 수 없잖아요"라고 했다. 정양은 "미국산 쇠고기가 이미 들어왔고, 시위해봤자 들어오는 걸 막을 수도 없다"며 "사람들도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반감이 심했는데 요새는 그런 생각을 별로 안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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