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희영 논설주간

일본독일을 제치고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떠올랐던 시기는 1968년이다. 그 무렵 허먼 칸(Kahn)이라는 미래학자가 서기 2000년 일본이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런 일은 물론 일어나지 않았다. 그 대신 2010년, 올해 42년 동안 일본이 누려온 세계 2위 자리는 중국에 넘어간다.

"모든 것이 가라앉는 기분이다." 한 일본인 기자가 오늘의 일본을 쉽게 전했다. 요코하마항구는 10위에서 29위로, 나리타공항은 4위에서 8위로 순위가 떨어졌다. 일본의 국가 경쟁력은 1990년 1위에서 19위로 추락했다.

이런 랭킹 변화보다 일본인을 더 자극하는 것이 대중(對中) 경제전쟁 결과다. "일본은 더 이상 아시아를 대표하는 나라가 아니다"고 한탄하는가 하면, "중국을 배워야 한다"는 주장마저 나온다. 세미나에서 일본을 비판하고 중국을 칭송할 때 청중석에서 박수가 터지는 광경은 지난 100년 동안 전혀 볼 수 없었던 분위기다.

금융위기가 지구상 부(富)의 물줄기를 바꿔놓았다고들 한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부(富)의 원산지가 바뀌는 점이다. 세계 경제를 주도하던 미국·유럽·일본이 고전하는 반면 브라질·중국·인도·아시아 국가들은 회복세를 되찾았다. 중심축이 서양에서 동양으로, 선진국에서 신흥국으로 이동하는 듯이 보인다.

일본의 어느 경제 평론가는 '서구화(西歐化)의 종언(終焉)'이라고 했다. 유럽·미국을 배우며 자본주의 기법으로 경제를 성장시키던 시대가 끝났다는 말이다. 한 술 더 떠 동아시아 판도가 이제야 정상화됐다고 주장하는 학자까지 나온다. 일본이 아시아 넘버 원이었던 100년여의 근대 역사가 이상(異常)한 시대였고, 중국이 부상한 요즘이 정상적인 세력 판도라는 것이다.

일본인의 패배감을 깊게 만든 것은 무능하고 알량한 정치다. 작년 12월 후진타오 중국 주석과 악수하는 사진을 찍으려고 집권당 최고 권력자와 국회의원 143명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 한 줄로 섰던 장면이야말로 일본 정치의 빈곤 상태를 전 세계에 보여준 압권이었다. 모처럼 정권 교체를 했건만 자민당 정권의 부패하고 결단력 없는 복제(複製) 정치인들이 재등장하는 판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일본 경제계는 중국에 밀리는 책임을 정치의 실패만으로 돌리지 못한다. 도요타·파나소닉 같은 대표 브랜드가 위기 속에서 활력소를 찾은 곳이 중국시장이다. 경영 실적 발표에서 '중국 법인의 이익이 늘어서…'라거나 '중국에 수출이 급증한 덕에…'라는 설명이 많아졌다. 중국에 밥줄을 기대는 일본인 입이 늘어나는 만큼 중국에 졌다는 패배 의식은 퍼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승부는 끝났고 패전(敗戰)했다고 일본이 자포자기에 빠지기엔 이르다. 부(富)의 샘물을 둘러싼 동양과 서양의 싸움, 선진국과 신흥국의 경쟁은 끝나지 않았다. 중국을 상대하는 경제전쟁은 이제 시작되었다고 보는 진단이 맞다. '2030년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예언은 허먼 칸의 예측처럼 과잉 예찬으로 끝날 수도 있다.

중국 경제의 미래는 2가지 시나리오를 똑같은 무게로 그려봐야 한다. 하나는 미국이 갔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이 갔던 길이다. 중국이 유럽으로부터 지배권을 넘겨받은 제2의 미국이 될지, 아니면 2위에 등극했다가 무너지는 제2의 일본이 될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중국이 세계 1위 국가가 되려면 적어도 두 번 기적이 일어나야 한다. 우선 중국부터 변해야 한다. 정치적 자유 허용, 인권 보호, 빈부격차 해소, 민족 간 분쟁 완화 같은 내부 개혁이 있어야 한다. 북한 등 테러국 통제나 지구 온난화 방지에 앞장서는 국제적인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한다. 위안화를 고정시켜 놓고 무역흑자만 챙기는 얌체성 정책도 1등국가로 가는 길에서 자격 미달 이미지를 심어줄 뿐이다.

또 미국·유럽·일본이 자기 개혁에 실패하는 기적이 한 번 더 일어나야 한다. 만약 선진국들이 위기에서 탈출한 후 재정적자·과잉소비 같은 경제병을 성공적으로 치료하면 지금의 세력판도는 연장되고, 중국은 2위 자리에서 후발 주자의 도전에 부닥칠 것이다.

허만 칸의 예언에 들떴던 1970년 오사카엑스포는 대성공했다. 40년 지난 어제 상하이에서 엑스포 개막 불빛이 치솟았다. 그때 미국 추월론에 우쭐했던 일본인이 정상이 아니었듯, 중국 중심의 재편론을 맹종하는 한국인이 급증한 현상도 정상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