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조전혁 의원이 전교조 가입 교사 명단을 공개하려 하자 전교조는 서울중앙지법에 '교원노조 가입교사 명단수집 및 제출금지 가처분'을 신청하였다. 이 신청이 기각당하자 전교조는 서울남부지법에 '교원노조 가입교사 명단공개 금지 가처분'을 신청하여 공개 금지 결정을 받아 냈다.

서울중앙지법은 전교조는 근로자 단체라는 점에서 다른 노동조합과 다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특히 정치활동이 금지된 단체이므로 이 단체에 소속되었다는 사실이 '사상·신조 등 개인의 기본적 인권을 현저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는 개인정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이 판결에 앞서 법제처도 전교조 가입 실명(實名) 자료는 수집이 금지된 개인정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남부지법의 담당재판부는 "전교조 가입교사 명단은 교원들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및 그들이 노조에 가입하여 활동할 자유(개별적 단결권), 그리고 단체가 존속·유지·발전·확장할 수 있는 권리(집단적 단결권)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정보"라고 판단하였다.

법 이론은 물론이고 법 상식에 비추어 보더라도 남부지법의 판단은 논리적 오류다. 전교조 가입교사 명단이 '사생활의 비밀'에 해당한다는 논거는 무엇인지, 전교조의 가입 여부가 밝혀지면 엄청난 신분상의 불이익이나 도덕적 비난을 감수해야 할 정도로 전교조가 지하 비밀조직이라도 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명단이 공개되면 단체의 유지·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주장은 전교조의 정체성을 법원 스스로 부인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법관이 법률과 양심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고 할 때 양심이란 법관의 '직업적 양심'을 말하는 것이지 결코 법관 개인의 주관적 가치나 이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이미 수차례 지적됐다. 법관뿐만 아니라 일부 변호사 또는 법학 교수 등 전문가들 역시 '전문가의 양심'을 저버리고 편향된 이념에 따라 법을 해석하고 논리를 비약하고 있다.

국회의원이 직무상 행한 행위에 대하여 법률상의 이익을 침해당할 우려가 있는 사람은 행정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명단 공개 행위가 행정소송의 대상이 아닌 사실행위 또는 정치행위라면 헌법재판을 통하여 구제를 받아야 한다. 이것이 현행 법체계다. 법원이 국회의원의 직무행위를 간섭할 경우 권력분립 원칙 위반 논란이 일 수밖에 없다. 의원의 의정 활동이 민사(民事)상 가처분의 대상이 된다는 것도 이해되지 않는 법 논리이다.

판사는 "교원의 노동조합 가입 및 활동은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당해 교원의 '업무 외적인 영역'에 있는 것으로서 개인정보라고 인정된다"고 했다. 이런 논리가 개인 주장도 아니고 법원 판결문에 서술되어 있다니 법학자의 한 사람으로 참담한 심정마저 든다.

법이란 사람에 따라 해석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학설의 대립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학설과 해석의 대립도 법체계와 법이론의 기본적 틀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뇌물·학연·지연 등에 의해 법원의 판결이 흔들려서는 안 되는 것처럼 판사의 주관적 가치나 이념에 따라 판단이 달라져서도 안 된다. 사법부와 법관은 자유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다. 자신이 어떠한 정치적 이념이나 성향을 가지고 있든 제발 재판만큼은 법관으로서 '직업적 양심'에 따라 현행 법체계를 준수하면서 판단해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