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토론에서 맞붙은 영국 3당 당수들. 왼쪽부터 노동당 고든 브라운 당수(현 총리), 보수당 데이비드 캐머론, 자유민주당 당수 닉 클레그

'영국의 영웅 윈스턴 처칠을 넘는 정치인이 탄생할 것인가?'

영국 자유민주당 당수 닉 클레그(Clegg·43)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이다. 더 타임스는 18일 "클레그가 1945년 처칠이 기록했던 지지율(83%)에 근접한 정치인으로 부상했다"고 보도했다. 클레그 당수는 지난 15일 밤 열린 총선(5월 6일 실시 예정) TV 토론회가 끝난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72%의 지지를 획득했다.

TV 토론 실시를 앞둔 며칠 전까지도 유권자들에게 얼굴이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던 클레그가 이제 정치권의 '샛별'이 돼 총선 정국을 이끌어가는 형국이다.

벌써부터 영국 언론들은 자유민주당의 부상에 따라 총선에서 절대 다수당이 없는 '헝 의회(Hung Parliament·불안하게 매달려 있다는 의미)'가 탄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본다. 실제로 일주일 전 여론조사에서 보수당·노동당에 이어 3위에 처져 있던 자유민주당의 지지율은 클레그의 인기에 힘입어 17일 1위로 올라섰다.

데이리 메일은 "TV 토론 이후 자유민주당의 지지도가 12%포인트 상승해 32%를 기록, 각각 보수당과 노동당의 지지율 31%, 28%를 앞섰고 영국의 전통적인 보수·노동 양당제의 구도를 깨뜨리게 됐다"고 전했다. 클레그 당수는 이 토론회에서 "지난 수십년 동안 낡아빠진 약속만 계속해온 기성(旣成) 정당들이 당신의 삶을 좌지우지하도록 더 이상 내버려두지 말라"고 말해 유권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클레그의 정치적 성향은 중도 보수다. 처칠처럼 그는 영국을 '유럽의 초강대국(superstate)'으로 만들고자 한다. 여기에다 40대 초반의 신선함, 잘 생긴 외모, 달변(達辯), 패션 감각까지 갖춰 인기몰이 중이다.

가정에도 충실한 편이라는 얘기가 많다. 지난 2004년 유럽의회 의원을 사퇴할 당시의 이유가 재미있다.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하기 때문에) 우리 같은 젊은 부부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라고 말했다. 세계 최대 로펌인 DLA파이퍼 소속 국제변호사인 스페인 출신 아내 미리엄 곤잘레스 두란테즈(Durantez)와 결혼해 3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작년 막내가 태어났을 때는 출산휴가를 떠나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2008년 3월 남성 잡지 GQ와의 인터뷰에서 "30명의 여성들과 잤다"는 말로 구설수에 올랐으나 독자들로부터 '솔직하다' '자신의 과거에 당당하다'는 평가가 오히려 많아 위기를 벗어났다. 클레그는 "16살 때 교환학생 자격으로 독일 뮌헨에 체류할 때 희귀 선인장에 불을 질러 법원으로부터 지역봉사활동 명령을 받았다" "나는 신(神)을 그다지 적극적으로 믿지 않는다"고 털어놓을 정도로 직설적이다.

젊고 대담한 클레그를 잡기 위해 2004년 유럽의회 의원직을 사퇴할 당시 보수당이 영입작전을 펼쳤으나 "난 자유민주당 의원"이라는 한마디로 거부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급상승한 인기 때문에 닉 클레그가 총선 이후 영국의 40대 총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한다. '영국의 버락 오바마(Obama)'가 나오지 않겠느냐는 관측이다. 하지만 정치 경력이 짧고 앞으로 남은 두 차례의 방송 토론에서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는 분석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