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을 무릅쓰고서라도 이번 기회에 싹 뜯어고쳐야 합니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2관왕 이정수(단국대)의 '대표선발전 담합' 파문을 둘러싼 진실공방은 그동안 가려져 있던 쇼트트랙계의 치부(恥部)를 드러내고 말았다. 한 일선 지도자는 "선수와 코치만 몰매를 맞을 게 아니라,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한 빙상계 실력자들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불과 4년 전 '한체대파'와 '비(非)한체대파'로 쪼개져 홍역을 치렀던 쇼트트랙계가 여전히 부끄러운 집안 싸움을 벌이는 것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였다.

많은 빙상인들은 선수측에서 주장하는 '윗선'의 실체를 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 같은 큰 대회에서 코치와 선수가 '선발전 순위'라는 원칙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출전 선수를 결정할 수 있었겠느냐는 설명이다.

이번 사태의 당사자로 지목된 선수와 코치의 발언도 이런 추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정수는 대한체육회 감사와 기자회견을 통해 "전재목 코치가 윗선의 지시를 받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남자 대표팀을 지도한 전 코치 역시 "내 마음대로 다 되겠느냐. 조사 과정에서 사실 그대로를 밝히겠다"고 말했다.

이정수측은 13일 기자회견에서 대한빙상경기연맹 고위 임원인 A씨의 이름을 '윗선'으로 거론했다. 9월로 연기된 대표선발전 일정에 반발하는 안현수(성남시청)의 아버지 안기원씨 등은 "A씨가 자신이 속한 팀의 이득을 위해 쇼트트랙 행정을 좌지우지한다. A씨와 또 다른 임원 B씨가 동반 퇴진해야 한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A씨는 "모두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한편 김철수 대한빙상연맹 감사가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을 사퇴하면서 공석이 된 조사위원 자리엔 권금중 한국중고빙상경기연맹 부회장이 새로 합류했다. 위원장은 위원들의 협의에 따라 오영중 변호사가 맡기로 했다. 조사위의 인적 구성이 공정하지 않다며 "조사에 불응하겠다"던 이정수의 아버지 이도원씨는 15일 "(이)정수가 성실하게 조사에 응할 것이다. 진실을 명백히 밝혀 선수들이 다시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