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리어(語)로 기록된 초기 불교경전은 부처님의 원음(原音)에 가장 가까운 경전입니다. 음악으로 치면 영화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인 셈이지요. 부처님이 말씀을 남긴 배경이 생생히 살아있는 원곡(原曲)을 먼저 들어보면 변주나 편곡을 들어도 차이점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지요."
서울 상도동 상도선원 원장 미산(53) 스님이 '미산 스님 초기경전 강의'(명진출판)를 펴냈다. 지난해 6월부터 8주간 매주 수요일 저녁에 신자들을 대상으로 연 '경전학당' 강의 녹음을 풀어 엮은 것이다. 강의에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게 되고, 이것이 일어나므로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게 되고, 이것이 소멸하므로 저것이 소멸한다"('맛지마 니까야') "지나간 것에 슬퍼하지 않고, 오지 않은 것을 동경하지 않으며, 현재에 얻은 것으로만 삶을 영위하나니 그들의 안색은 그래서 밝도다"(상윳따 니까야) 같은 쉬운 표현의 부처님 말씀이 등장한다.
미산 스님은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초기 불교경전 연구를 바탕으로 한 '남방불교의 찰나설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최고전문가가 해설한 만큼 이 책은 내용이 쉽고, 비유도 생생하다. 부처님 말씀을 암송해서 후대에 전한 비구들에 대해서는 "엄선된 사람들로 지금으로 치면 영재집단인 '멘사(Mensa)' 회원쯤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불교에서 삼독(三毒)이라고 부르는 '탐진치(貪瞋癡·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마음)'는 '확, 욱, 멍'으로 표현했다. "탐진치라면 한자부터 어렵잖아요? 그래서 제 나름대로 쉽게 표현해보려고 했죠. 탐내는 것은 마음이 '확' 쏠리는 것이고, 성내는 것은 '욱'하는 마음이며, 어리석은 것은 '멍'한 마음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
미산 스님은 이렇게 대중들의 눈높이로 초기 불교경전의 핵심 정신을 전한다. 온 우주가 인연의 그물로 연결돼 있다는 '연기법(緣起法)', 모든 존재현상을 가리키는 '일체법(一切法)', 제행무상(諸行無常)·제법무아(諸法無我)·일체개고(一切皆苦)를 가리키는 '삼법인(三法印)', 고(苦)·집(集)·멸(滅)·도(道)의 4가지 큰 진리인 '사성제(四聖諦)' 등이다.
미산 스님은 스님들도 낯선 초기 불교경전을 일반 신자를 대상으로 강의한 이유에 대해 "교리와 수행과 삶이 일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수행이 구체적인 삶으로 드러나기 위해서는 이론적 받침이 있어야 하고, 지식이 지혜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강의와 책에서는 구체적 실행에 대한 조언이 많다. 한 예로 들숨에 감사, 날숨에 사랑을 되뇌어 보라고 권한다. "과거와 미래의 다른 공간이 아닌 '지금, 여기'를 놓치지 않는다면 '확, 욱, 멍'에 휘둘리지 않게 됩니다. 웬만해서 꿈쩍하지 않는 주체적 에너지가 작동하게 되고 이것이 수행의 출발이지요."
미산 스님은 이번에 책으로 엮인 강의 이후에 '초기경전 2'를 강의했고 지금은 '금강경'을 강의하고 있다. 3년 과정으로 앞으로 능엄경, 원각경, 기신론, 화엄경, 서장, 선요, 몽산법어 등을 차례로 강의할 예정이다.
▲16일자 A25면 '탐·진·치, 쉽게 말하면 확·욱·멍' 기사 중 '진(嗔)'의 한자를 '瞋'으로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