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초보 배우처럼 떨립니다. (여성국극 배우였던) 엄마 배 속에서부터 무대에 올랐고 극장 먼지 속에서 살아왔는데 올해는 제 해, 백호 띠입니다. 극단 미추 단원들, 엄마 노릇 못해 외롭게 자란 우리 아들딸, 설거지 안 하게 밖으로 내쫓고 병풍이 돼준 시집 식구들 고맙습니다…."
12일 오후 서울 동국대 이해랑예술극장. 제20회 이해랑연극상을 받은 배우 김성녀(60)씨의 수상 소감은 드라마틱했다. 길게 요동치는 말들이 감격의 깊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마당놀이는 올해를 끝으로 접고 무대에서 젊은 연출가들과 작업하고 싶다"면서 "부끄럽지 않은 멋진 배우, 끝까지 가는 배우로 남겠다"고 말했다.
수상자 김씨에게 트로피와 상패를 수여한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은 인사말에서 "김성녀씨는 30여년 동안 연극·마당놀이·뮤지컬 무대에서 변화무쌍한 인물을 창조한 배우"라며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모든 것을 거는 우리 배우들에게 큰 격려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해랑연극재단(이사장 이방주)과 조선일보사가 함께 운영하는 이해랑연극상은 한국현대연극사의 거목인 이해랑(李海浪·1916~1989) 선생이 추구한 리얼리즘 연극정신을 이어가는 국내 최고의 연극상이다. 지난해까지 3000만원이던 상금은 올해부터 5000만원으로 대폭 늘었다.
올해 스무살이 된 이해랑연극상 역사상, 부부의 동반 수상은 이번이 처음이다. 수상자 김씨의 남편인 연출가 손진책씨는 13회 수상자다. 임영웅 심사위원장이 심사경위를 발표하며 "남편이 연극만 할 수 있도록 내조한 공도 크게 기여했다"고 말하자 식장은 웃음바다가 됐다. 사회를 본 배우 손숙씨는 배우자가 상금을 받는 관례에 따라 상금을 받은 손진책씨에게 "(아내에게) 꼭 전해 드려야 합니다"라고 못을 박았다.
이날 시상식에서는 '파우스트 장'으로 불리는 원로배우 장민호씨가 특별상을 받았다. "진실한 내면연기로 이해랑 연극정신을 실천했다"는 평이다. 기립박수를 받은 장민호씨는 수상 소감에서 "연극이 끝나고 커튼콜 때 듣던 박수 소리와 오늘 들은 건 다르네요. 가슴이 뭉클합니다"라고 했다. 또 이해랑연극상을 후원해온 이종문 미국 암벡스벤처그룹 회장이 감사패를 받았다. 이날 시상식에는 임영웅 극단 산울림 대표, 유민영 단국대 명예교수, 서연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빙교수 등 심사위원을 비롯해 이해랑 선생의 가족인 이방주 이해랑연극재단 이사장과 이민주·이석주·이유영·이상영·이은지·이사라씨, 배우 황정순·백성희·권성덕·전성환·박정자·윤소정·서희승·정동환·이인철·이호성씨, 평론가 구히서·허순자·김방옥씨, 연출가 김삼일·김철리·심재찬·채승훈씨, 안무가 국수호씨, 무대미술가 박동우씨, 이한승 실험극장 대표, 박범훈 중앙대 총장, 최치림 대학로예술센터 이사장, 안호상 서울문화재단 대표, 박명성 전 서울연극협회장, 김문순 조선일보 미디어연구소 이사장(이해랑연극상 운영위원장), 변용식 조선일보 발행인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한편 시상식에 앞서 이해랑예술극장에서는 '이해랑의 연극과 예술'을 주제로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해랑연극재단과 동국대학교가 주최한 이 심포지엄에서는 '한국현대연극사와 이해랑' '연기자로서의 이해랑' '이해랑의 연출기법과 자세' 등으로 이해랑 연극세계를 재조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