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고문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정비사업은 정권의 명운(命運)을 건 대규모 토목사업이다. 세종시 문제와는 또 다른 차원이다. 세종시 문제는 이 대통령으로서는 안 해도 되는 일이고 정 불리하면 손 떼면 된다. 하지만 4대강 사업은 이 대통령이 그렇게도 하고자 하는 필생의 사업이며, 이 대통령의 '신앙'과도 같은 대역사(大役事)다. 세종시는 훗날 교정이 가능한 일이지만 4대강은 한번 잘못되면 교정이 불가능한 국토훼손의 문제다.

정치적 측면에서 보면 세종시 문제는 정부의 수정안이 채택되지 않더라도 손실이 크지 않고 사람에 따라서는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는 면도 있다. 그러나 4대강 사업은 그것이 실패하는 날이면 이 대통령과 정권만 망가지는 것이 아니고 차기 정권의 재(再)창출에도 암운(暗雲)이 드리우는 결정적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다.

4대강 사업은 현재 시공사와 계약이 끝나고 보(=댐)를 세우는 기초공사가 4대강 전역에서 진행되고 있어 정부당국자의 말대로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4대강 사업은 앞으로 아무리 문제가 드러나고 치명적 결함이 발견돼도 속수무책이란 말인가? 4대강 사업에 대한 찬반 논란은 진부할 정도로 개진된 상태다. 그럼에도 강력한 대립만 있지 국민적 합의는 아직 없는 상태에서 공사가 착수된 것이다. 전래적인 물 부족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가뭄과 홍수에 대비해 물을 보유하거나 통제하는 기능은 국가 생존에 관한 문제라고 하는 MB 쪽 주장과, 높이 10m 내외의 보 건설로 인한 수질 저하문제, 주변지역 침수문제, 생태계 훼손 등 환경악화 문제를 제기하는 반대론자들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 있는 상태다.

4대강 사업은 국민적 합의 없이 밀어붙이기식(式)으로 갈 수 없는 문제다. 이 대통령의 신념과 의지만으로 될 문제가 아니다. 반대론자들이 제기하는 문제들이 현실로 드러나고 여론의 분열이 더욱 심화되는 난관에 봉착할 경우도 염두에 둬야 한다. 성공할 것으로 확신하는 용기도 중요하지만 실패할 경우의 안전판도 중요하다. 이 대통령의 지지기반인 보수·우파 세력에 대한 '정치적 보험'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런 차원에서 이 대통령은 4대강 사업을 2단계로 추진하는 융통성을 보였으면 한다. 4대강 중 정부가 판단하기로 가장 정비가 필요하고 또 주민들의 찬성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강을 하나 선택해 그곳부터 사업을 본격화하고 그 결과를 보자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반대론자들이 제기한 문제점들이 크게 부각되지 않고 정비의 효과가 정부의 의도대로 나타나면 지역주민뿐 아니라 전체 국민의 긍정적, 적극적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을 토대로 곧 이어 다른 강의 정비에 착수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점이 드러나더라도 그 정도가 심각하지 않고 충분히 보완이 가능한 것이라면 이것을 다른 강 정비에 반영하는 것으로도 반대론의 강도를 약화시키고 동시에 정부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는 측면도 있다. 이미 시작한 만큼 나머지 세곳의 공사를 임시나마 중단한다는 것이 재정적으로 적지 않은 손실이고, 또 정부의 의지(意志)에 금이 가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그 비용은 실패의 경우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 대통령의 문제는 세종시 문제나 4대강 사업을 '정치'가 아닌 '정책'으로만 본다는 데 있다. '정책'에는 판단, 의지, 용기, 신념, 실천력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 문제들은 '정책'으로 시작됐는지 몰라도 이미 '정치'의 영역으로 옮겨져 있다. '정치'에는 설득, 소통, 양보, 타협이 필요하다. 따라서 4대강 문제에는 설득과 소통이 중요하며 양보와 타협을 돌파구로 삼을 수밖에 없다. 절충하고 양보했음에도 반대가 막무가내이면 그때 밀고나갈 명분을 얻을 수 있다.

지금 이 대통령이 여러 긍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세종시, 4대강, 무상급식, 사법개혁, 교육개혁 등 하는 일마다 사사건건 논란에 휩쓸리는 것은 그가 자신의 판단에 대한 우월적 믿음, '국가와 민족'에 대한 선지적(先知的) 자만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 대통령에게 지금 절실히 필요한 것은 '막히면 돌아가라','급할수록 쉬었다 가라'는 옛 명언인지도 모른다. 세종시도, 4대강도 돌아가고 쉬었다 갈 줄 아는 지혜를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