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희영 논설주간

경제학자들이 시소효과(Seesaw effect)라는 표현을 쓸 때는 정치와 연결시킨다.

경기 호황이 오래가면 정치가 후퇴하고 열등화한다는 것이다. 선심이 남발되고 인기 영합에 빠지는 국면은 대개 경기가 풀리는 즈음이다.

한국 정치도 요즘 시소를 한껏 즐기고 있다. 공약을 펑펑 쏴대며 시소 끄트머리 자리에서 더 높이 몸이 공중에 뜨기를 바라는 어린아이처럼 칭얼대고 있다. 정치인에게 올봄은 경제는 돌아가고 선거까지 앞둔 겹경사다.

연말 연예대상 시상식의 꽃다발처럼 전국 곳곳에 헤픈 꽃이 쏟아진다. 동해안과 충청북도에는 경제자유구역이 추가로 들어설 모양이다. '입주 기업이 확보된다면'이라는 조건 아래 경제특구로 지정해줘야 한다는 대통령의 지시성 발언이 있었다.

6개의 경제자유구역마저도 넘친다는 결론이 내려진 지 오래다. 비행기로 1~2시간 거리에 더 좋은 특구가 널려 있는 중국을 외면할 기업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대구·황해경제자유구역에는 외국 기업이 단 한 회사도 오지 않았다. 투자하겠다고 장관·도지사 앞에서 서류에 사인한 후 실제로 돈을 갖고 오는 실적은 15%가 채 안 된다. '국제도시'로 간다던 송도는 결코 오지 않을 손님을 위해 준비한 최고급 메뉴판이 되고 있다.

세종시에 8조5000억원 이상의 세금을 쓰지 않겠다던 조항도 깔끔하게 삭제했다. 인구 50만 신도시를 성공시키려면 그 이상의 국민 세금을 써야겠다지만, 새만금 신도시에 들어갈 22조원의 투자액은 또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기업도시·혁신도시를 약속하며 거대한 버블 사기극을 벌인 정권을 바로 몇년 전 겪었다. 땅을 팔아 거액을 손에 쥐었던 사람도 있지만, 청와대의 '강력한 지방분권 의지'를 믿고 뛰어갔던 건설 회사들에 남겨진 것은 미분양 아파트 10만여채다.

정치권의 시소 태우기에 흥분한 나머지 하늘 높이 치솟았다가 맨땅에 추락한 신세들이 기업도시·혁신도시 주변에는 너무 많다. 이들이 아파트 양도세를 감면해주는 특혜를 더 연장해 달라고 보채는 이유도 정부 믿었다가 낭패했기 때문이다.

경기회복기에 정치가 즐기는 시소게임은 무료 급식, 전철·지하철 연장, 바이오단지, 의료 벨트 등 다 꼽을 수 없다. 그 메뉴판이 길어지는 만큼 시소에서 떨어져 사망하거나 부상당할 피해자는 늘어갈 것이다.

직접 시소 위에 올랐다가 다행히 치명상을 입지 않는 국민이라도 최소한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해야만 한다. 정치인의 시소게임에는 엄청난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번 정권 들어 공식 국가 부채는 67조원 늘었다고 한다. 지방정부와 공기업 부채까지 함께 보면 150조원 이상 늘었다는 통계도 있다. 금융 위기를 이겨내려고 지출한 금액이 적지 않고, 이 정도면 모범적으로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금액이라고 정부는 설명한다.

하지만 위기가 끝났다고 판단한다면 국가 부채부터 필사적으로 줄여가야 마땅하다. 예산 지출을 줄이고 팔 수 있는 물건은 팔아서 국민 세금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 그런데도 집권자나 야당이나 시소를 타는 기쁨만 만끽하고 있다.

지난달 서울에 왔던 로고프(K. Rogoff) 하버드대 교수가 라인하트(C. Reinhart) 교수와 최근 공동 출판한 책은 '이번은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이다. 지난 800년간 66개 국가의 금융 위기와 재정 파탄을 연구했다.

두 교수의 결론은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나 금융 위기가 지나면 반드시 국가 부채가 늘어나고 재정 위기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신흥국일수록 국가 부도나 채무 불이행으로 빠질 위험은 크다고 했다.

800년 동안 변하지 않는 또 하나의 법칙은 어느 국가의 어떤 정권도 역사의 실패에서 배우지 않더라고 그들은 정리했다. 똑같은 금융 위기가 재정 위기로 발전, 경제가 후퇴하는 길로 가는데도 위정자들은 '이번만큼은 다르다'거나 '우리는 다른 나라와 다르다'며 빚을 늘려가며 선심 공세를 펼치곤 한다.

우리는 지난 두 번의 정권이 국가 부채를 겁 없이 늘려오던 것을 보았고, 외환 위기 때 풀려나간 공적자금도 회수율이 6할 선에 머물고 있다. 엊그제 난 상처가 다 낫지 않은 판에 부채를 급속도로 늘려가는 정권을 또 만났다. 정치가 조종하는 위험한 시소 끝에서 국민은 언제 추락할지 모른 채 하늘로 치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