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민은 평소에도 사형제도에 대해 과반 이상이 지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다. 김길태 사건 같은 흉악범 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지지율이 더 올라간다. 지난 12일 실시된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의 조사에선 83.1%가 사형제에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강호순 사건 때도 비슷한 여론이 형성됐고 법무부는 사형수 중 일부에 대한 형집행을 검토했었지만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다. 외교통상부가 "우리는 1997년 이후 사형집행을 하지 않아 '실질적 사형제 폐지국'으로 분류되고 있다"며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사형집행이 13년간 이뤄지지 않아 인권국가로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진 것이 사실"이라며 "사형제 폐지가 가입조건인 EU(유럽연합) 등에서 사형제 폐지를 계속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한국이 사형을 집행할 경우 사형제 폐지를 내건 EU와의 통상 마찰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제기됐다. 실제 지난 3년간 20건이 넘는 사형을 집행한 일본의 경우 EU에서 이 같은 통상 압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EU는 2008년과 2009년 유엔에 사형제 집행유예 결의안을 제출했고, 두 번 모두 과반 이상의 찬성으로 채택했다. 우리나라는 두 번 다 기권했다.

지난달 사형제에 대한 헌재의 합헌 결정이 나왔을 때, 주한 영국대사관은 보도자료를 내서 헌재의 결정을 비판했다. 영국은 '사형제 폐지'를 국가적 가치의 하나로 인식하고 국제사회에 확산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고 사형제 폐지가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은 여전히 사형을 집행하고 있고, 이들은 EU가 제출한 사형제 폐지 결의안에 대한 유엔 투표에서 반대 또는 기권표를 던졌다. 지난 2월 일본 내각부의 조사에선 85.6%의 일본 국민이 사형제 존속에 찬성했다. "피해자와 가족의 분노에 공감한다" "폐지할 경우 흉악범죄가 증가한다"는 우리와 비슷한 이유였다.

유영철, 강호순, 김길태 등 반인륜 범죄자들이 등장할 때마다 사형제 집행을 둘러싼 논란이 일곤 한다. 예전엔 국내 여론의 향방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지만, 이젠 국제사회 주요 구성원들이 사형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지도 고려에 넣지 않을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올해는 G20 정상회의 등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더욱 주목을 받는 해이기 때문에 사형 집행에 정부가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