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 갇힌 수감자 신세였어요. 매니저가 부르면 5분 이내에 달려가야 하고, 연습 도중 전화를 받았다고 '○○년아'라고 욕먹는 일은 부지기수였어요. 춤 연습하다가 허리를 다쳤는데 병원에 보내주지 않아 그냥 있었더니, 허리 디스크가 됐대요. 이젠 춤을 못 춰요."

아이돌이 되겠다는 꿈으로 3년간 한 기획사에서 연습생 생활을 하던 김모(21)씨는 과거를 떠올리며 눈이 붉어졌다. 연습생을 그만둔 그는 현재 신경정신과를 다니며 우울증 약을 복용 중이다. 허리 디스크로 "1년간 절대 무리해서 움직이면 안된다"는 판정도 받았다. 그는 "뒤돌아보니 기획사에 들어온 순간부터 난 가수라는 꿈을 향해 달리는 게 아니라 꿈의 노예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김씨는 요즘에는 연기자가 되려고 오디션을 보러 다닌다. 중독인 셈이다.

어린이 2명 중 1명이 장래희망으로 연예인(어린이 포털사이트 '다음 키즈짱' 1만478명 조사)을 꼽는 세상이다. 아이돌 그룹 열풍이 불면서 이른바 '연예인 고시'(기획사 오디션에 통과해 연예인 준비생 즉 연습생이 되는 것)에 목매는 청소년도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스타를 꿈꾸는 연습생은 1000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10대 후반 청소년이 대부분인 연습생 중에는 기획사의 육체적, 정신적 횡포에 시달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시스템이 갖춰진 대형 기획사가 아니라 성공 확률이 낮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소 기획사가 문제.

본지가 15명의 연습생을 인터뷰한 결과, 이들의 인권은 바닥 수준이었다. 먼저 살인적인 일정. 학교를 자퇴한 연습생도 있었고, 학생인 경우는 방학 중에는 무조건 합숙 훈련이다. 합숙 중 연습시간은 오전 9~10시부터 새벽 2~3시까지로 점심·저녁 식사를 전후한 휴식시간은 2~3시간에 불과했다. 훈련 시간 중에는 모두 춤, 노래, 연기 연습과 몸매를 위한 트레이닝 시간. "하루 5시간밖에 못 자는 빡빡한 스케줄이 가장 힘든데 아침에 눈을 뜰 때면 다시 지옥에 돌아온 기분이에요."(16세 연습생 백모군)

하루 식사는 1000㎉, 라면(500 ~600㎉) 2개 분량도 채 안 된다. 연습생 강모(19)양은 "하루 열량 1000㎉를 넘지 않기 위해서는 배가 고플 때 물을 마시는 수밖에 없다"며 "연예인이 되면 원래 모습보다 1.5배 정도 불어서 화면에 나오기 때문에 살을 많이 빼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연습생 김모(20)씨는 "물 한 모금 안 먹고 5시간 동안 춤만 춘 적도 있었는데 내가 정말 이런 취급까지 받으며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한모(23)씨는 "조금이라도 가만히 있는 게 눈에 띄면 게으르다고 욕먹기 때문에 늘 몸을 움직이고 있어야 한다"며 "매니저들이 '굴린다'고 할 때는 새벽까지 쉬지 않고 춤만 추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한 매니저는 " '하루 4시간 자야 서울대 간다'는 말이 있지만 가수로 성공하려면 하루 2시간 자야 한다"며 "연습생들에게 가끔 체벌도 가하고 야단을 치는 건 경쟁이 그만큼 치열한 곳에서 그들을 성공의 길로 인도하기 위한 목적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72만여명의 지원자를 끌어모은 음악채널 m.net의 오디션 프로그램‘슈퍼스타K’. 연예 스타를 꿈꾸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사건’이었다. 이런 종류의 오디션에 지원한 청소년 중 상당수는 기획사 연습생이 되기를 꿈꾼다.

연습생 사생활은 철저히 통제하면서, 밤에는 술자리에 부르는 이중적인 기획사도 있었다. 연습생 최모(17)군은 "휴대폰은 대부분 회사 사무실에서 보관하고, 기획사에서 인터넷 미니홈피도 수시로 확인해 친구 사진이나 글이 올라오면 경우에 따라 삭제하라고 하거나 무슨 내용이냐고 캐묻는다"고 말했다. 정모(18)양은 "새벽에 잠자리에 누웠는데 갑자기 매니저가 전화해 외출복을 입고 나오라고 해서 가보니 회사 간부의 술자리였다"며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술도 마시고 춤도 췄는데 술집 여자가 된 기분이었다"고 했다.

구타와 욕설이 가해지는 경우도 있다. 박모(21)씨는 "노래 연습을 하는데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선생님한테 따귀를 맞은 적이 있다"며 "데뷔를 준비하는 언니들은 작곡가한테 맞은 적도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한 기획사 관계자는 "과거보다는 좋아졌지만, 일부의 경우 아직도 연습생들을 '줄빠따' 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귀띔했다.

작은 기획사들의 경우, 형편이 어려워지면 연습생을 방치하기도 한다. 정모(20)씨는 "연습생 6명이 팀으로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6개월 후 기획사가 돈이 떨어졌다며 아무 관리를 해주지 않았다"며 "매니저도, 선생님도 없이 청담동 한복판에서 빈둥거리며 1년 넘게 지냈는데 나쁜 길로 빠질 뻔한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예비 스타'들이 청소년 시절부터 억압된 생활 속에 왜곡된 가치 체계를 갖게 되는 것이 걱정스럽다고 지적한다. 밝은 청소년 지원센터 지정순 전문위원은 "연예계 생활 시작부터 힘 있는 자로부터 폭력적 대우를 받았기 때문에 스타가 될 경우, 자신의 힘과 권력에 도취될 가능성이 높고 사람으로서 자존감도 높지 않을 것"이라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사고 연예인들 중 일부도 성장 과정에서 그런 문제를 갖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청소년 폭력 예방재단 고려대 심리학과 성영신 교수는 "재능 없는 아이를 연예인으로 키우고 싶어하는 부모의 과욕도 기획사의 무리한 행태를 부추기고 있다"고 꼬집었다.

['위험한 꿈' 아이돌 연습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