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중생 성폭행 살해 피의자 김길태(33)에 대해 경찰은 11일 밤 10시쯤 강간·살인·감금·강간치상·절도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김길태의 성폭행 및 살해 혐의를 증명하기 위한 경찰과, 범죄 사실을 부인하는 김의 '공방'은 이날까지 이틀째 치열하게 전개됐다. 경찰은 성폭행과 살인이 언제 어디에서 이뤄졌는지를 집중 추궁했다. 하지만 김은 살해된 이모(13)양과 관련한 혐의 일체를 완강히 부인했다.

경찰은 충분한 과학적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김의 몸에서 채취한 DNA와 이양의 몸에서 채취한 타액 등의 DNA가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11일 오전 부산 사상경찰서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수사본부장인 김영식 부산지방경찰청 차장은 "김길태의 구강 상피세포에서 채취한 DNA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감정 의뢰한 결과 시신에서 채취한 DNA와 일치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앞서 지난 8일 이양 시신에서 발견된 체액과 체모 등에서도 김길태의 것과 일치하는 DNA를 발견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김이 현재는 범행 전체를 부인하고 있지만, 말을 바꿔 성폭행 혐의는 인정하되 살해는 인정하지 않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 경우 살해에 대한 직접 증거가 필요하다. 현재까지 경찰이 제시한 증거는 엄격히 보면 성폭행과 관련된 것이다. 이에 대해 경찰은 "그것은 형식 논리"라며 "만약 김이 성폭행만 하고 이양을 놓아 줬다면 제3의 인물이 집에 가는 이양을 살해했다는 것이 되는데 범행 동기도 없이 그럴 리 없다는 점에서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성폭행과 살해가 한 세트로 간다는 얘기다.

얼굴 완전히 가린 채… 11일 부산 사상경찰서에서 마스크를 쓴 김길태가 수사관들과 함께 진술녹화실로 향하고 있다.

그렇지만 법정 공방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역시 살인 혐의에 대한 확실한 물적 증거가 필요한 건 사실이다. 경찰이 확보하고 있는 이 부분에 대한 증거는, 시신이 발견된 물탱크 옆에 있는 빈집에 김길태가 다녀갔고, 이양 시신에 뿌려진 석회가루가 그 빈집에서 발견된 점 등 정황적 사실뿐이다. 따라서 물탱크에서 시신과 함께 발견된 '이양의 옷가지가 든 비닐봉지' 등 수거물에 대한 분석작업에서 지문 등 김이 남긴 증거를 찾는 것이 과제로 남아 있다.

김길태는 현재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심지어 "이양이 누군지도 모른다"고 시치미를 떼고 있다. 김은 이양 시신에서 자신의 DNA가 검출됐다는 경찰 얘기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다. DNA가 뭔지도 모르겠고, 법대로 하라"고 맞서고 있다. 경찰은 이런 김의 태도가 그의 '일관된 성향'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김을 검거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강희정 경사는 "김은 과거 자신이 저질렀던 성폭행 등 범행에 대해서도 끝까지 부인하는 행태를 보였다"고 말했다. 지능적·계획적으로 연쇄 살인 범행을 저질렀지만 검거된 뒤 자신의 모든 혐의를 순순히 인정하고 여죄까지 털어놓은 강호순과는 대조적이라는 것이다.

표창원 경찰대 행정학과(범죄심리학) 교수는 "성사 가능성은 낮지만, 김길태는 경찰이 내놓은 증거들이 법원에서 인정되지 않거나 성폭행 범행만 인정돼 가벼운 처벌을 받기 위해 버티고 있는 것 같다"며 "사이코패스 기질의 그가 범행을 계속 부인하는 것은 본능적 자기 방어 의식을 드러낸 것이거나 의도적 망각을 시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