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사회정책부장

세계적 물리학자 이성익 서강대 교수가 자택 아파트에서 투신한 것은 2월 24일이었다. 주머니에 짧은 유서가 들어 있었다. '물리학을 너무나 사랑했는데 잘하지 못해 힘들다….'

이 교수는 초전도(超傳導) 분야에서 세계에 자랑할 만한 석학(碩學)이었다. 노벨상에 근접해 있다던 유망한 과학자가 돌연 목숨을 끊었으니 참으로 기가 막힌 사건이었다. 경찰은 자살 이유를 '우울증'으로 설명했다. 연구 성과가 나지 않아 스트레스가 컸다고도 했다.

그러나 의문은 여전했다. 왕성하게 활약하던 52세의 스타 학자가 왜 갑자기 정신질환에 걸렸을까. 매년 수십 편의 논문을 발표하던 그가 왜 느닷없이 연구 부진에 빠졌을까.

주변 사람들을 취재하다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됐다. 사건 배경엔 이 교수의 개인적 귀책(歸責) 범위를 넘어선 사회적 요인이 개입하고 있었다. 2년 전 이 교수가 포스텍(포항공대)에서 서강대로 이적(移籍)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던 '한국적' 상황이 석학을 우울증으로 몰아갔던 것이다.

당시 이 교수의 이적은 순조롭지 못했다. 모교(母校)인 서강대는 파격 조건을 제시해가며 공격적인 스카우트에 나섰으나 포스텍 역시 그를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두 대학의 밀고 당기기가 6개월여 이어진 끝에 이 교수는 결국 모교행(行)를 선택한다.

이 과정에서 연구비 유용 의혹이 터졌다. 이 교수가 프로젝트 비용을 개인적으로 썼다는 투서가 뿌려진 것이다. 포스텍측은 연구비 배분에 불만을 품은 내부 연구원의 제보로 보인다고 밝혔다. 투서 시점이 우연치고는 참으로 공교로웠다.

이 문제로 이 교수는 큰 고초를 겪었다. 포스텍은 약 1개월간 진상 조사를 벌였고, 이 교수 징계 절차도 밟았다. 그가 이적을 강행하자 징계 실익(實益)이 없어진 포스텍의 조사는 끝났지만 이번엔 경찰 수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관할 포항경찰서의 수사는 반년 이상 계속됐다. 이미 서울로 이사한 이 교수는 수시로 포항에 내려가 경찰 조사에 응해야 했다. 결국 수사는 무혐의로 종결됐지만 이 교수의 충격은 컸다고 주변에선 전한다. 이때부터 그는 정서적으로 불안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를 데려온 서강대측 준비도 순조롭지 못했다. 약속했던 연구실 공간을 제때에 마련해주지 못하는 바람에 이 교수는 이직 후 상당 기간 제대로 된 실험을 할 수가 없었다. 실험 설비 문제까지 겹쳤다. 이 교수는 포스텍에서 자신이 쓰던 연구 기자재를 옮겨다 쓰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희망은 불발됐고, 새 기자재를 구입해 실험실을 처음부터 새로 세팅하느라 다시 몇 개월을 허비해야 했다.

이 교수는 테니스와 스쿼시를 즐기는 쾌활한 성격이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사람이 180도 달라졌다. 자기 방에 틀어박혀 대인기피증을 보였고, 줄담배를 피워댔다. 연구밖에 모르는 백면서생(白面書生)의 학자로선 견디기 힘들었던 것 같다.

이 교수의 죽음은 복기(復棋)할수록 아쉬움이 남는다. 대학의 인재 확보 경쟁을 탓할 생각은 없지만, 대학들이 조금만 더 대승적 자세를 보였다면 어땠을까. 우리 사회에 석학을 좀더 세심하게 보호해주는 시스템과 문화가 있었다면 결과는 달랐지 않았을까.

이 교수는 유서에서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그저 '(연구를) 잘하지 못해 힘들다'고 했을 뿐이다. 그러나 스스로를 책망하는 이 구절이 세상을 향한 마지막 항변처럼 우리의 귀를 찌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