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경제연구본부장

올해로 91주년이 된 3·1절 연휴 동안 한국은 모처럼 행복감에 흠뻑 젖었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국내 선수들이 환상적인 성과를 내며 일본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요즈음 한국은 경제적으로도 일본에 대한 자신감을 높여가고 있다. 세계 금융위기의 와중에서 국내 주요 기업들이 사상(史上) 최고의 실적을 기록하고 있는 반면 일본 기업들은 수익 악화에 시달리고 있는 까닭이다. 급기야 일본 산업의 상징적 존재인 도요타자동차가 대대적인 '제품 환수(리콜)'사태에 직면하면서 일본 따라잡기가 불가능하지만은 않다는 기대감도 생기고 있다.

사실 일제(日帝) 강점(强占)으로부터 해방된 이후 한국 경제는 일본을 무섭게 추격해 왔다. 그 결과 해방 당시 한·일(韓·日)의 실질 국내총생산 격차가 16배였으나 한국이 경제 개발을 본격화한 지 불과 50여년이 지난 지금은 3배 정도 차이로 크게 축소되었다. 업종별로 보면 산업화시대의 주력 업종인 가전·조선 등은 이미 한국이 앞섰고 철강·자동차와 같은 분야 역시 차이가 좁혀지고 있다. 정보화시대의 총아로 불리는 반도체·정보통신 분야에서는 한국이 일본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다. 과거의 추격 속도를 유지한다면 한국 경제가 머지않아 일본을 추월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갖게 된다.

하지만 일본 경제를 추월하는 일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일단 한국과 일본의 경제 규모는 여전히 큰 차이가 벌어져 있다. 현재 1인당 국민소득 규모는 일본이 한국의 딱 2배 정도다. 일본이 '제로(0)' 성장을 하면서 가만히 있는다 하더라도 한국은 지금부터 10년 동안 줄곧 명목(名目) 기준으로 6% 내외 성장을 해야 비로소 일본 수준에 겨우 도달한다. 일본 산업을 모방하여 추격하는 성장 모형을 선택한 한국 경제의 태생적 한계도 일본 추월을 어렵게 한다. 한국 경제는 그동안 기술과 부품소재 등에서 일본에 대한 의존도를 너무 높여 왔다. 그 결과 국내 경제는 상당 기간 일본 수준 내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결국 한국 경제가 일본을 추월하는 길은 일본을 모방(模倣)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하루속히 일본과 차별화하는 데 있다. 한국 경제가 일본을 뛰어넘으려면 무엇보다 중단 없는 성장 가도를 달려야 한다. 지금처럼 대외 여건 변화에 크게 흔들리고 사회 통합이 어렵고 노사관계가 험악해서는 지속 성장은 불가능하다.

기술과 산업 발달의 토대가 되는 기초 학문 능력의 격차를 줄이는 노력도 필요하다. 한·일 간 지식 격차의 심각성은 노벨상 수상자 현황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물리·화학·의학 등의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일본은 무려 15명이나 되는데 한국은 아직까지 한 명도 없다. 게다가 한국의 전체 연구·개발 투자 규모는 일본의 20%가 채 안 된다. 겸허하게 한국 경제의 참모습을 바라보고 한국의 지식 수준을 높이기 위한 대책 마련에 몰두해야 한다. 일제 때부터 변치 않고 내려오는 국내 학제(學制)와 암기식 교육을 과감히 뜯어고치는 혁신을 서둘러야 한다.

잘나갈 때 나타났던 '일본병(病)'역시 경계해야 한다. 일본은 고도성장으로 자만·폐쇄·경직이란 병을 얻어 흔들리고 있다. 우리도 최근에 국내 제품이 세계 시장에서 잘나가는 것을 보고 우쭐해서는 안 된다. 원화(貨) 가치 하락 등에 힘입은 현상으로 봐야 한다. 경제 극일(克日)이 진짜 극일이고, 이는 우리의 한계를 아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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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대한민국, 이제 다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