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항법장치(GPS)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각종 기기에 대한 해킹 위험성이 증가하고 있다고 영국의 BBC방송이 23일 보도했다.

GPS장치를 ‘재밍(jamming·정상적인 작동을 방해하는 교란 신호를 보내는 것)’하는 기기가 늘어나면서 해킹의 방법도 점차 정교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BBC는 이러한 해킹의 피해가 GPS장치 사용자들은 물론, 사회 기반시설 전체에 미칠 수도 있다고 전했다.

23일 테딩턴의 영국 국가물리연구소(NPL·National Physical Laboratory)에서는 GPS 해킹 위험에 대처하기 위한 회의가 열렸다. 영국 왕립항법기구의 전 회장 데이비드 라스트 교수는 회의에서 “GPS는 수송, 배달, 긴급 서비스, 광업, 도로 건설, 농업 등 모든 곳에 쓰인다”며 “하지만 이 회의장 밖에서 GPS가 제공하는 정확한 시각 정보가 통신망, 인터넷, 은행 전산망 등을 운영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특정 지역에 GPS 교란 신호를 보내는 재밍은 적의 항해·비행 시스템을 마비시키기 위한 군사적 용도로 사용돼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인터넷에서 소형 재밍 기기들을 쉽게 구할 수 있다. 배터리로 작동하는 휴대용 소형 장비도 수십 킬로미터 밖의 GPS 장치를 교란시킬 수 있다. 대형 장치는 더욱 강력해서 GPS와 휴대전화 주파수를 교란시킬 수 있다.

라스트 교수는 “이런 교란장치들이 1∼2년 안에 범죄 조직의 손에 들어갈 수 있다”며 “이 경우 값비싼 물품을 수송하는 트럭을 추적하는 GPS를 무력화해 강도질을 하는 등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회사의 공용 차량에 달린 추적장치를 무력화하거나, 고속도로 통행요금 징수 시스템을 마비시키는 등의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높아지는 위험성에 대비하기 위한 묘책은 아직 마련되지 않고 있다. BBC는 한 회의 참석자가 미국이 개발한 ‘US GPS’, 러시아의 ‘Glonas’, 유럽의 ‘갈릴레오’ 등 현행 GPS 시스템 외에 새로운 시스템을 채택하자고 주장했으나, 새 시스템이 해킹 위험을 줄여준다고 믿을 만한 근거는 부족하다고 전했다.

라스트 교수는 “항법은 더이상 ‘얼마나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이제는 정확한 값을 안전하고 지속적으로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