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교육계는 '입학사정관제' 이야기로 떠들썩하다. 학생·학부모들은 입학사정관제에 대비해 어떤 비교과활동을 해야 할지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러나 '대입'만을 위한 비교과활동은 의미도 없을뿐더러 실패하기 십상이다. 반면 어릴 때부터 자신의 관심사, 즉 '취미'를 잘 발전시키면 비교과활동은 저절로 해결될 수 있다. 일찌감치 자신이 좋아하는 것, 취미를 찾아내 꾸준히 하면서 자기도 모르는 새 '특별한 포트폴리오'를 쌓은 학생들을 만났다.

박수현(경희대 건축학과 합격)

박수현양.

박수현(19·울산 성광여고 졸)양은 어려서부터 집과 건물에 관심이 많았다. 초등학생 때부터 문구점에서 나무를 사다가 머릿속으로 구상했던 집을 직접 만들고, 인터넷에서 예쁜 집 모형을 찾아보곤 했다. 박양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심즈(건물, 도시 등을 만드는 생활 시뮬레이션 게임)' 게임을 시작해 고교 3학년까지 질리지 않고 계속했다. 그만큼 집을 짓고 설계하는 것이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중·고교에 올라가서도 방과 후나 주말을 이용해 건물모형을 계속 만들었다. 미국 국회의사당, 샤또 드 샹보르 성, 부르즈 알 아랍 호텔의 건물모형을 만들었다. 컴퓨터로 바닷가 대저택, 지하가 있는 모던하우스 등 다양한 그래픽 조감도를 그리기도 했다. 울산대 건축대학에서 주최한 제17회 건국디자인탐구대회에도 참가해 '컨테이너 하우스'의 설계도면과 건축모형, 조감도로 장려상을 받았다. 컴퓨터를 자주 다루다 보니, 워드프로세서, 컴퓨터활용능력, 정보기기운용기능사, 정보처리기능사 등의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남자아이들이 취미로 게임을 하듯, 저는 건축에 빠졌던 거예요. 건축 이야기나 특정 건물의 기사가 나오면 스크랩을 해두고, 건축 관련 정보를 열심히 찾아봤어요.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는 적어뒀다가 시간 날 때마다 컴퓨터로 설계도나 조감도를 그려보곤 했죠."

길에서 눈에 띄는 건물을 발견하면 '어떤 용도로 지었을까?' '저렇게도 지을 수 있구나'라며 생각을 거듭했다. 해외여행을 갔을 때도 건물을 더 유심히 살폈다. "유럽, 중국, 홍콩, 일본 등에 해외여행을 하면서 본 건물을 소재로 여행일지를 썼다"고 전했다. 이런 활동은 자연스럽게 '건축가'라는 꿈으로 이어졌다.

"오스트리아에 갔을 때 건축가 훈데르트 바서가 만든 건물을 봤어요. 건물의 곡선이 참 아름답게 느껴졌죠. 우리나라 전통건축도 곡선이 많잖아요. 저도 훈데르트 바서처럼 우리나라의 곡선미를 살린 건물을 짓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만들어온 여행일지나 건물모형, 조감도 등은 고스란히 입학사정관제에 딱 맞는 포트폴리오가 됐다. "제가 어릴 때는 입학사정관제라는 말이 없었다. 어느 날 TV에서 패션모델이 자신의 이력과 사진을 담은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모습을 보고, 제 활동내용을 포트폴리오처럼 정리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국내에서 학부과정을 마치면 외국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이에요. 공원, 임대아파트, 장례식장 같은 공공건물을 짓는 건축가가 되고 싶어요. 한국 전통미와 저만의 개성이 살린 작품을 만드는 것이 꿈이죠. 또 저처럼 확고한 꿈을 가진 학생들을 위해 직접 학교를 지어 후원하고 싶어요."

조민홍(카이스트 합격)

조민홍군.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카이스트에 합격한 조민홍(19)군은 부산 대진정보통신고를 졸업했다. 전문계고에서 국내 최고 명문대로 꼽히는 카이스트에 합격한 데는 그의 특기인 '로봇'이 큰 몫을 했다.

조군은 보통 남자아이들이 그렇듯 어렸을 때 레고 장난감 등 로봇을 무척 좋아했다. 설명서 없이 형태만 보며 자신의 생각대로 이리저리 고치면서 로봇을 조립했다. 손목시계, 도어락, 메트로놈 등 궁금한 물건은 모조리 분해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과학잡지에서 로봇대회 기사를 보고 처음 참가했는데 일등을 하면서 더욱 로봇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전했다. 그때부터 조군은 '로봇 만들기'라는 취미에 푹 빠졌다. 중학교 때까지 방과 후나 주말 등 시간이 날 때마다 쉼 없이 로봇을 만들었다. 뭔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 자리에서 바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렸다.

"어릴 때부터 관심을 갖고 보고 배운 것이 로봇이니까, 제 생각을 로봇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어요. 화가가 그림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예를 들어, '걷는 게 불편하면 어떻게 하지? 제대로 걷고 싶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면 제가 직접 로봇 다리를 만들어보는 거예요. 길을 가다가도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재료를 급하게 구해서라도 바로 만들곤 했어요."

중학교 졸업 후 조군은 일반고에 진학했다. 로봇은 잠시 접어두고 우선 공부에 매진하겠다는 생각에서다. 로봇은 대학에 가서 만들자며 자신을 다독였다. 하지만 로봇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을 몰랐다. 교과공부를 하면 할수록 로봇공학자라는 꿈과 멀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고1 2학기에 대진정보통신고로 전학했다. "학교에 로봇동아리가 있다는 말을 듣고 선택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전학 후 로봇동아리에 들어간 조군은 로봇 제작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2007년에 국제 로봇 올림피아드 한국 대회에서 대상인 전 과학기술부 장관상을 받았고, 2008년에는 국제 로봇 올림피아드 세계대회에서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각종 로봇대회에서 받은 상이 120여개가 넘는다. 이러한 활동내용을 인정받아 지난해 8월, 카이스트 입학사정관 전형 합격자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조군은 후배들에 "우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고, 꿈을 정하라"고 조언했다.

"저는 큰 목표가 있을 뿐 바로 눈앞의 목표는 세운 적이 없어요. 큰 목표를 따라가다 보니 대학 입시까지 성공할 수 있었죠. 대학 이름이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꿈이 무엇인지, 꿈을 이루려면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 원하는 공부를 하는 데 어느 학교가 가장 유리한지를 먼저 생각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