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텍(포항공대)이 오는 3월 신학기부터 강의와 연구, 교수회의 등을 영어로 진행하는 '영어 공용화 캠퍼스' 선언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백성기 포스텍 총장은 10일 본지 인터뷰에서 "대학의 글로벌화를 위해서 외국 교수나 학생이 와서 불편 없이 지낼 수 있어야 한다"면서 "캠퍼스 내 영어 사용을 원칙으로 하는 '영어 공용화' 선언을 오는 3월 초 공표할 예정"이라고 했다. 백 총장은 "우선 나부터 3월 2일 입학식 식사(式辭)를 영어로 하겠다"고 밝혔다.

포스텍의 '영어 공용화 캠퍼스'는 ▲강의 ▲논문 ▲세미나 ▲회의 ▲학내 게시물 ▲행정문서 ▲인터넷 홈페이지 ▲외국학생·교수 대면서비스 ▲행정규정 등 9개 분야에서 국어 대신 영어를 쓰겠다는 것이다. 백 총장은 "학교 교육과 연구, 행정 전반에 걸쳐 영어를 우선으로 사용하도록 하고, 적용범위를 단계적으로 확대해 3년 안에 '영어 공용화 캠퍼스'를 완성하겠다"고 밝혔다.

포스텍의 '영어 공용화' 계획은 대부분 국내 대학들이 추진하고 있는 영어 강의를 뛰어넘어, 논문·교수회의·세미나·행정문서 등에 모두 영어를 사용하도록 하는 파격적인 내용이다. 포스텍은 "현재 1개 동(棟)에서 시범운영 중인 영어 전용 기숙사도 모든 기숙사(24개동)에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영어 공용화'는 학교 전체를 바꾸는 작업이라고 백 총장은 설명했다.

◆"대학 국제화 위해 불가피하다"

백 총장은 "영어 공용화는 진정한 대학 국제화를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백 총장은 "포스텍을 모델로 만들어진 홍콩과기대가 세계적 대학(2009년 조선일보·QS 아시아대학평가 4위)으로 급성장한 배경에는 영어 공용화라는 '무기'가 있었다"며 "한국 대학들이 한 단계 뛰어넘으려면 '영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진정한 대학 국제화는 국내 대학으로 외국의 우수 학생과 교수들이 오도록 하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외국인들이 불편 없이 공부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언어의 벽'을 헐어야 한다는 것이다.

포스텍은 "2학기 중 새로 오픈하는 학교 홈페이지는 영어를 주 언어로 하고 한글을 보조 언어로 사용할 것"이라며 "글로벌 캠퍼스를 지향하면서 한글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백 총장은 "올해부터 2012년까지 '영어 공용화 캠퍼스' 프로젝트를 실시하면 앞으로 포스텍에서는 모든 강의, 모든 연구, 모든 회의, 모든 문서가 영어가 기반이 되는 캠퍼스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다른 국내 대학들도 영어 강의를 늘리고 외국인 교수를 초빙하는 등 '국제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예컨대 카이스트는 지난 2007년 서남표 총장 부임 직후 "신입생부터 100% 영어 강의를 하겠다"고 선언하고, 매년 영어강의 비율을 높여, 올해 봄학기 학부 강의는 전체의 89%가 영어로 진행된다. 카이스트 윤준호 교육혁신팀장은 "석사 과정도 외국인 학생이 1명이라도 수강하면 영어로 강의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밝혔다. 서울 주요 사립대의 경우 전공 강의의 20~35% 정도를 영어로 강의하고 있다. 하지만 영어 공용화를 선언하고 모든 학사행정을 영어 위주로 바꾸는 것은 포스텍이 국내 4년제 대학 중 처음 시도하는 것이다.

◆"국제화 대세" vs. "비효율적" 양론

캠퍼스 영어 공용화에 대해서는 찬반이 나뉜다. 국제화 측면에서 대세라는 긍정적인 의견이 있는 반면, 성급한 공용화는 강의와 행정 모두에 비효율을 초래한다는 부정적인 주장도 있다.

한국외대 차경애 영어교육학과 교수는 "학생들이 국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영어는 필수로 해야 하기 때문에 캠퍼스에서 영어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반면, 지방 국립대 경제학과 정모 교수는 "요즘 신임 교수들은 대부분 영어 강의가 가능한 사람만을 뽑고 있는데, 정작 더 중요한 능력은 간과하고 영어 능력으로만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고 비판했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직원은 "연구나 강의에서 영어를 사용할 수는 있겠지만, 회의나 행정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것은 굉장히 비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영어 공용화는 10여년 전 작가 복거일씨의 주장을 계기로 논쟁이 촉발된 적이 있다. 당시 복씨는 "이제 민족주의를 '열린 민족주의'로 전환해 영어 공용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로부터 논쟁이 일어나 학자와 문인, 언론인이 이 논쟁에 참여했다. 국어학자 남영신씨와 역사학자 한영우 서울대 명예교수가 여기에 반대하고, 문학비평가 정과리 연세대 교수, 정치학자 함재봉 박사가 동조하면서 사회적 논쟁으로 불붙었다. 논쟁은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영어 몰입교육 등이 교육 현안으로 등장하면서 다시 언급되기도 했었다.

[찬반토론] 포스텍 '영어 공용화 캠퍼스', 여러분 생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