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창동초등학교 허금범(62) 교사가 42년간 모아 온 499장의 월급명세서를 쌓아 놓은 모습.

"42년간 모은 봉급명세서들 속엔 제 교사생활의 역사도 녹아 있습니다. 맨 처음 받은 봉급명세서만 빠져 있는 게 아쉽다면 아쉬운 점이지요."

8일 서울 도봉구 창동초 6학년 2반 교실에서 허금범(62) 교사가 검은색 파일 3권을 내밀었다. 겉에 '봉급명세서'라고 적힌 파일을 열자 마른 볏짚처럼 누렇게 바랜 봉투부터 하얀 인쇄지까지 봉급명세서 499장이 들어 있었다.

허 교사가 지난 1968년 6월 1일 창신국민학교(현 초등학교)에 교사로 부임한 이후 42년간 교직에 몸담으며 모아온 봉급명세서들이다. 200장은 겉면에 봉급명세서가 적힌 월급봉투이고 299장은 봉투와 따로 나온 봉급명세서들이다. 세월에 빛이 바래고 구겨져 있었다. 바닥에 차곡차곡 쌓으니 50㎝를 훌쩍 넘었다. 허 교사는 "대단한 게 아니라고 생각해 큰 봉투에 넣어 보관하다가 얼마 전 파일로 정리했다"고 말했다. 허 교사는 1968년 7월 생애 두 번째 월급봉투를 받아들고 교무실을 나오다 문득 '지난달보다 얼마나 더 받았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책상 서랍과 방 안을 아무리 찾아봐도 첫 월급봉투는 보이지 않았다. 누구라도 붙잡고 자랑하고 싶었던 첫 월급봉투였다.

허 교사는 "다음 달에는 월급을 비교해보자는 생각에 7월 봉급명세서를 갖고 있다가 막상 한 달 뒤엔 버리기 아까워 계속 보관하게 됐다"고 했다. 허 교사는 이사할 때면 봉급명세서부터 챙겨 서류 가방에 담아 손수 옮겼다.

1968년 7월 허 교사의 기본급은 1만3250원이었다. 교재연구비 1000원과 연구보조비 2000원을 합해도 세금을 떼고 나니 1만4846원이었다. 허 교사는 "라면 한 개가 16원이던 시절이라 총각이 아껴 살면 부족함 없는 월급이었다"고 했다.

그로부터 41년이 흐른 지난해 7월 허 교사의 기본급은 373만7500원으로 280배 이상 올랐다. 같은 기간 라면값이 45배 오른 데 비해 많이 올랐지만 그렇다고 생활이 여유로워진 건 아니다. 1980년 9월 결혼할 때 방 2칸 전셋집에 12년간 모은 300만원을 몽땅 쏟아부었고, 10년 뒤에는 대출까지 받아 27평짜리 아파트를 장만했을 뿐이다. 두 자녀를 낳을 때의 기본급은 20만원을 갓 넘었다. 이들이 대학에 다니게 된 2001년 월급은 그때보다 올랐지만 봉투 두께는 얄팍하게만 느껴졌다. 허 교사는 "내가 술도 거의 안 마시고 집사람도 알뜰해 늘 부족하다는 생각은 안 했지만, 집 장만하고 아이들 대학 뒷바라지를 할 때는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1974년 제1차 오일쇼크 때 월급이 잠시 줄었고, 1997년 IMF위기 때도 예년보다 월급 인상이 더뎠다.

42년간 봉급명세서를 모아 온 서울 창동초등학교 허금범 교사가 8일 과거와 현재의 봉급명세서를 설명하고 있다.

허 교사가 모은 봉급명세서는 네 차례 바뀌었다. 1968년 7월부터 1985년 2월까지는 봉투 표면에 손으로 쓴 것이었지만, 1985년부터 1991년 7월까지는 돈이 담긴 봉투와 별도로 갱지에 쓴 봉급명세서가 나왔다. 1991년 8월부터 하얀 모조지에 삐뚤삐뚤한 구식 타자기 글씨가 찍힌 명세서가 나오더니 1995년부터는 반듯한 컴퓨터 글씨가 찍힌 명세서로 바뀌었다. 이마저도 2004년 1월부터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에서 온라인으로 제공되고 필요한 사람만 봉급명세서를 출력하게 됐다.

허 교사는 지난해 11월 행정안전부가 선정한 '대한민국 최고 기록 공무원' 94명 중 한 사람으로 뽑혔다. 봉급명세서를 빠짐없이 모아 기록왕으로 선정된 것이다. 가족들도 그때야 알게 됐단다. 그는 "봉투째 집사람에게 줬다가 '다음 달하고 비교하게 봉투만 달라'고 해서 모았기 때문에 내가 이걸 모은다는 사실은 가족들도 몰랐다"고 했다. 오는 8월 정년 퇴임하는 허 교사는 506장으로 늘어날 봉급명세서를 교육박물관에 기증할 계획이다.

허 교사는 교내 보이스카우트 단장을 맡으면서 모은 기념 배지를 1998년 지인(知人)이 세운 김포 덕포진 교육박물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허 교사는 "뭔가를 모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며 "내가 모은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교육적으로 쓰일 수 있으면 더 보람될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