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한 인터넷 서점이 작년 말 스마트폰으로 책을 주문하고 결제(決濟)하는 시스템을 구축했지만 한 달도 안돼 대형 카드회사 2곳이 그 결제를 거부했다고 한다. 결제 시스템이 국내 표준인 '공인인증' 방식과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이곳만이 아니다. 국내에선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쇼핑이나 인터넷 뱅킹을 할 수 없고, 전자정부 사이트와 국세청 홈택스 사이트에도 들어가지 못한다. 우리보다 먼저 스마트폰이 출시된 전세계 80여개국 가운데 어느 나라에도 없던 일이다.

원인은 2000년에 도입된 공인인증 제도에 있다. 공인인증서를 컴퓨터 내의 특별한 위치에 저장한 뒤 공인인증서를 이용할 때마다 별도의 프로그램을 컴퓨터에 설치해 인증서를 끌어내도록 한 방식이다. 국내 기업들은 프로그램 개발 비용을 줄이기 위해 사용자가 가장 많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터넷 익스플로러에서 작동하는 프로그램만 만들었고, 결국 그게 표준으로 굳어졌다. 이른바 '액티브X' 프로그램이다. 그래서 국내에선 익스플로러를 통하지 않고는 전자상거래와 인터넷 뱅킹을 비롯해 실명(實名) 확인이 필요한 대부분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게 돼버렸다. 액티브X 프로그램만 이용하는 공인인증 제도는 전 세계에서 한국에만 있다. 세계 웹브라우저 시장에서 익스플로러 비중이 60%대로 떨어진 것과는 달리 국내에선 익스플로러 비중이 98%에 이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스마트폰에선 액티브X 프로그램이 작동하지 않는데 있다. 심지어 마이크로소프트가 스마트폰용으로 개발한 프로그램도 액티브X를 지원하지 않는다. 인터넷을 하다 보안경고창이 뜨면 무조건 '예'를 눌러 뭔지도 모를 프로그램을 자기 컴퓨터에 설치하게 하는 액티브X 방식이 악성 프로그램(바이러스)을 퍼뜨리는데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원래 개발자인 마이크로소프트조차 이제는 포기한 낡은 기술에 한국만 매달려 있는 바람에 문제가 터진 것이다. 애플 아이패드를 비롯해 앞으로 쏟아져 나올 다른 휴대용 IT기기들도 마찬가지다.

외국에선 PC나 스마트폰 어디에서도 이용할 수 있는 웹 표준 기술을 채택해 우리처럼 보안접속·키보드 해킹 방지·개인 방화벽·백신 같은 액티브X 프로그램을 덕지덕지 깔지 않고도 간편하게 인터넷 쇼핑과 인터넷 뱅킹을 한다. 한국만 이런 세계의 표준에서 벗어나 있다.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 발달이 지지부진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공인인증 제도를 포함해 국내 인터넷 환경의 폐쇄성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