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후 3시쯤 서울 A산부인과 강북 지점은 조용했다. 20대로 보이는 캐주얼 차림 여성 5명이 소곤소곤 얘기하거나,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며 진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녀가 2인용 소파에 나란히 앉아 벽걸이 TV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했다. 접수대 옆에는 개인병원으로는 보기 드물게 ATM(현금인출기)이 설치돼 있었다.

이 병원은 산부인과 의사 모임 '프로라이프(prolife) 의사회'가 지난 3일 불법 낙태 수술을 해온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곳이다. 의사회는 이 밖에도 경기도와 광주광역시에 있는 병원 2곳을 더 고발했다. 모두 낙태수술 쉽게 해준다는 소문이 의료계 안팎에 파다했던 곳이다.

그러나 이날은 분위기가 달랐다. 사후피임약 처방을 받으러 온 환자가 "약이 안 들어 임신이 되면 낙태수술을 받을 수 있느냐"고 묻자, 이 병원 의사는 "여기선 수술 안 된다"고 거절했다.

이 병원의 강남 지점도 마찬가지였다. 20대 여성 6명이 한산한 대기실에 띄엄띄엄 앉아 있었다. 낙태수술 가능 여부를 묻는 환자에게 간호사는 "여론이 좋지 않아 요즘은 수술 안 한다"고 했다. 그는 "검찰에서 수사 들어갔기 때문에 요즘 강남 지역 산부인과들은 다 안 한다고 보면 된다"며 "정 해야겠으면 경기도 쪽으로 나가셔야 할 것"이라고 했다.

두 곳 모두 검찰 고발 전과는 태도가 달랐다. 지난 1일 기자가 A산부인과 강북 지점 간호사에게 "임신한 친구가 있는데 이곳에서 낙태수술을 받을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는 "본인이 직접 와서 진료를 받으면 원장님이 결정하신다. 저희는 최대한 도와드리려고 한다"는 대답이 나왔다. 사실상 '해준다'는 얘기였다.

실제로 취재진은 작년 12월 초 이 병원에서 아이를 뗐다는 대학원생 B(26)씨 사연을 취재할 수 있었다. B씨는 인터넷 포털에 '미혼여성임신' '초기임신' '수술상담' 같은 검색어를 쳐서 자신의 학교 근처에서 낙태수술 해주는 병원들을 쉽사리 찾아냈다. B씨는 산부인과 5~6곳에 낙태수술이 가능한지 전화로 문의했다. 모두 "전화 상담은 안 하니 일단 방문해서 진료를 받으라"고 했다. B씨는 친구들로부터 "A산부인과가 제일 쉽게 해준다더라"는 얘기를 듣고 이곳을 택했다.

A산부인과 의사가 초음파 검사로 B씨의 임신을 확인했다. 의사의 첫 질문은 "임신 유지하실 거예요?"였다. 이어 간호사가 낙태수술 비용과 일정 등을 상담했다. 간호사는 B씨에게 "영양제 맞으셔야 되는데, 보통 5만원짜리로 한다"며 "(기록 남지 않도록) 현금으로 하실 거죠?"라고 물었다. B씨는 정해진 날짜에 다시 와서 수술을 받고 병원 근처 레지던스에서 사흘간 요양했다.

B씨는 "아직 학생인데 임신을 한 제가 잘못한 것이지만, 의사가 낙태수술하는 태도가 너무 무감각하고 상업적이라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의사는 사무적인 얼굴로 B씨를 수술했다. 의사 본인도 임신 중이었다.

서울 강남의 한 산부인과 개원의는 "애 받는 병원은 없어도 애 지우는 병원은 천지"라며 "출산은 의사로서 비용이나 위험부담이 큰 반면 낙태는 간단한 시술이라 사실상 산부인과의 주수입원이 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프로라이프의사회는 이날 "복지부가 당장 적극적인 단속을 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은 직무유기"라고 반발하며, 불법낙태 사례들을 추가 공개했다. 의사회는 ▲경남 모 산부인과가 감기약을 먹은 산모에게 "기형아를 낳을 수 있으니 빨리 낙태하라"고 권했다는 사례 ▲충남 모 국립병원이 낙태수술을 '계류유산'(자궁 안에서 태아가 사망한 유산)으로 처리한 사례 ▲전남의 모 조산소가 저소득층 산모에게 임신 개월 수당 10만원씩 받고 불법 낙태수술을 했다는 사례 등이 제보로 들어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활동에 부정적인 산부인과 의사들도 있었다. 서울 지역의 또 다른 산부인과 개원의는 "변두리 병원에 가면 결혼한 부부가 나란히 와서 '형편상 도저히 아이 키울 능력이 없으니 수술해달라'고 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며 "좋아서 낙태수술을 택하는 사람은 없는데도 프로라이프 의사회 회원들이 '도덕'을 무기 삼아 일방적으로 여성들을 압박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