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평우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강기갑 의원사건, MBC PD수첩사건 등의 판결과 관련해 단독판사제 개선 등 사법(司法) 개혁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사법 불신(不信)의 원인이 '단독판사제' 때문만은 아니다.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사법이 되려면 법관 개인의 자질(資質)이나 재판부 구성 방법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투명한 사법 절차가 우선이다. 헌법 제109조는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고 규정하여 재판 공개 원칙을 선언하고 있다. 사법 신뢰는 재판의 심리와 판결을 공개함으로써 이루어진다는 것이 헌법 정신이다. 문제는 '사법 공개'의 방법과 범위다.

미국·호주·캐나다 등 선진 외국들은 국민이 관심 갖는 모든 재판사건들에 대하여 재판의 전 과정과 내용을 데이터베이스에 실어 무료 내지 염가(廉價)의 인터넷 서비스로 국민에게 개방해 접근을 보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의 PACER(Public Access to Court Electronic Records)과 호주의 AUSTLII(Australasian Legal Information Institute) 등이다. 판결문은 물론이고 당사자의 변론(辯論) 자료까지 공개하고 있다. 중요 사건에 대하여는 재판 과정을 찍은 영상 및 음성까지 공개한다.

우리 경우는 어떤가. 국민이 사법 정보를 무료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매체는 대법원 홈페이지(www.scourt.go.kr )이다. 그런데 이 홈페이지에 공개되는 것은 일반 사건의 재판 진행 일정과 일부 대법원 사건의 판결 요지 및 판결문 정도다. 전체 법원 사건의 95% 이상을 차지하는 1심과 2심 판결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나마 공개되는 대법원 판결은 대부분 법률 논쟁에 대한 판단이라 일반국민에게는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판결의 기초 자료인 당사자의 상고 이유와 답변 내용이 공개되지 않아 대법원 판결이 과연 잘 되었는지 여부를 평가할 수도 없다.

일반국민 생활에 유익한 법률 정보는 대부분 1심·2심 판결인데 이 판결문은 일반 국민은 말할 것 없고 법학자·변호사·검사에게조차도 공개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같이 일반국민들에게는 철저히 접근이 봉쇄된 1·2심 판결문들이 법원 내부 전산망에는 올라와서 법관들은 물론 심지어 법원 직원들도 쉽게 볼 수 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최근에 문제된 PD수첩사건의 판결문을 대한변호사협회장인 필자조차 구하지 못하다가 뒤늦게 아는 판사를 통해 겨우 구해 보았다.

법관들만 사법 정보에 접근할 수 있고 변호사와 국민들은 접근할 수 없는 이 정보 불평등 체제는 명백히 헌법의 판결 공개 원칙에 위배된다. 구체적인 사건 내용이 판결문에 나오는 1심 판결문이 공개돼야 학자들은 사례 연구를 할 수 있고, 검사들은 유사(類似)사건의 수사나 공소(公訴) 유지에 참고할 수 있다. 변호사들은 유사사건의 승소(勝訴) 여부를 예측할 수 있으며, 국민들은 법률 생활에 참고할 수 있어 국민의 법률문화가 발전하고 편리해진다.

지금 누구나 사법 개혁을 거론한다. 그러나 항상 그렇듯이 개혁은 '원 포인트(One-Point)' 개혁이 되어야 성공할 수 있다. 과거처럼 이것저것 건드리는 백화점식 사법 개혁은 실패하기 십상이다. 오늘 이 시점 사법 개혁은 법관들이 독점하는 1심과 2심의 판결 정보를 국민들에게 똑같이 공개하는 '사법정보공개법' 제정(制定)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