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 선임기자

당초 동생 지만(志晩)씨도 박근혜 전 대표의 입장에 반대했다. 신년 가족모임에서 논쟁이 오갔다. 그때 박 전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건 그렇지 않다. 선거 때 이명박 후보가 충청도에 내려가 '틀림없이 원안대로 하겠다'고 몇번 공약했지만 안 먹혀들자 내게 대신 설득해달라고 부탁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내려가서 '분명히 지킨다. 나를 믿어라'고 했다. 지금 와서 어떻게 딴소리를 할 수 있나. 누가 정치인의 말을 믿겠나. 신뢰를 세우지 않고는 4만달러 시대가 돼도 우린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정치적으로 잘못된 약속은 국가를 위해 바로잡아야 한다는 논리 앞에서, 그는 '꽉 막힌' 외고집처럼 비친다. 그럼에도 이 말 했다가 고개 돌리면 저 말 하는 우리 정치판에서 박근혜라는 '믿을 수 있는' 정치인을 가졌다는 것은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한나라당 주류들이 '반대파'인 그를 노골적으로 공격할 때마다, 이런 시적 변조(變調)를 떠올리는 것이다. "그를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믿을 만한 정치인이었나."

한나라당이 좀 더 성숙한 정당이라면, 오히려 박근혜라는 '불편한' 존재를 고맙게 여겨야 옳다. 정당이란 본래 논리와 가치관, 혹은 여러 입장들이 서로 다투고 싸우는 곳이다. 위에서 버튼을 눌러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은 과거 독재자의 전위부대라면 몰라도 민주사회의 정당은 아니다. 대통령의 '말씀'이 있고서 당내에서 세종시 문제가 아무런 소음 없이 받아들여졌다면 그건 한나라당의 '죽음'이 됐을 것이다.

물론 당내 계파 간 갈등과 분란, 콩가루 집안을 초래한 장본인으로 박 전 대표를 찍을 수도 있다. 그러나 좀 더 냉철하게 따져보면, 한나라당은 그로 인해 얻은 것이 훨씬 많다. 우선 세상의 관심을 한나라당으로 돌려놓았다. 추운 날 거리로 뛰쳐나가 선전전을 벌이고 머리를 삭발했던 야당보다 그의 언행이 더 뉴스가 됐다. 정치를 안다면 외면과 무관심보다는 욕먹더라도 시끄러운 게 백번 낫다는 걸 안다. 이걸로도 그의 존재 의미는 충분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세종시법 수정안을 끝까지 부결시킬 것이다. 현 정권이 공무원을 집단 교육시키고 대국민 홍보에 총력전을 편들 그를 이겨내긴 어렵다. 표(票) 계산은 금방 나온다. 그동안 다른 의견을 내놓았던 친박(親朴)계 중진들이 차례로 그의 '칼'을 맞으면서 나머지 의원들은 입을 다물었다. 그가 '무서운' 여왕이 됐다는 말도 돌았다. 결국 세종시 수정안 부결의 '일등 공신'은 박 전 대표가 될 게 틀림없다. '미래의 권력 후보'로서 그의 존재감은 더욱 뚜렷해질 것이다.

대신 세종시 수정을 내놓은 이명박 대통령에겐 괜히 몇 달간 국론 분열을 일으킨 책임이 남을 수밖에 없다. '불도저' 동력은 급격하게 떨어지고, 국정 주도권에서 많은 걸 잃을 게 틀림없다. 그럼에도 '국가 장래를 위한' 그의 진정성은 인정받을 것이다. 아마 일부 국민들은 MB에 대해 미안해하고 그를 아쉬워할 것이다.

어쩌면 박 전 대표는 눈앞에서는 이겼지만 결국 이긴 게 아닐지 모른다. 그의 다음 목표가 '대권'에 있다면 말이다. 물론 그가 정치적 계산으로 수정안에 반대하는 인물일 리는 없다. 다만 그를 둘러싼 측근들이 영남표+'충청표'를 얻었으니 유리하다고 계산할 수는 있다.

그러나 수정안의 부결 상황을 직접 맞게 되면, 수도권과 보수층의 '숨은 여론'이 대폭발할 것이다. 아마 시간이 갈수록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려 한 그의 공로는 잊혀지고, "그가 국가 대사의 발목을 잡았다"고 기억할 것이다. 민심이란 이런 묘한 구석이 있다. 무엇보다 국민들은 '힘센 걸로 비친' 정치인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 법이다. 현 정권 출범 당시 '2인자' 이재오가 왜 저렇게 지내고 있는지, 유권자들이 왜 그를 안 받아들이는지의 교훈이 바로 눈앞에 있다.

박 전 대표의 원칙과 신의는 아름답다. 그러나 아름다운 것은 간혹 질 때 더 아름답다. 특히 자신의 강한 소신을 양보할 때 말이다. '세종시 수정안 승부'에서 그가 질 경우 당내 세력 기반의 약화를 걱정하지만 그 순간 그는 더 많은 국민들을 얻게 될 것이다. 지는 게 이기는 이치다.

그를 아낀다면 그가 품위있게 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당초 그를 끌어안지 못했던 '협량(狹量)'의 대통령이 앞장서면 더욱 그림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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