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의형제는

국정원 대공팀장인 한규(송강호)는 고정간첩 지원(강동원) 일당이 전향한 간첩을 처단하는 현장까지 추적했으나 간발의 차로 지원을 놓친다. 국정원은 구조조정을 이유로 그를 쫓아내고, 한규는 사설 흥신소를 차려 달아난 외국인 노동자와 한국에 시집온 동남아 여자들을 찾아내는 사업을 한다. 어느 날 공장에 취직해 숨어 사는 지원을 우연히 만난 한규는 간첩단을 잡아 포상금을 받고 명예도 되찾으려고 자신을 몰라보는 그에게 접근한다. 지원 역시 한규가 사업가로 위장해 정보수집을 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그의 흥신소에 취직한다. 두 남자가 서로 속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이, 북에서 또 다른 암살지령이 내려온다.

송강호의 영화 속 이름은 판수·조필·두만·강두같이 촌스러운 적이 많았다. 그는“이번에는‘한규’라서 좀 세련됐구나 했더니, 강동원 이름은‘지원’이더라”며 껄껄 웃었다.

실제 만난 송강호(43)의 외모에서는 후광(後光)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검정 일색 옷차림에 영화에서처럼 퍼머 머리를 한 그에게는, 칸 레드 카펫의 휘황함 같은 것이 없었다. 반대로 부동산 중개소나 편의점 같은 소규모 개인사업자의 평범한 인상이었다. 그는 사진기자를 위해 벽에 기대 서 있을 때도 "진정 그대가/ 원하신다면" 하며 조영남의 '사랑이란'을 흥얼거렸다. 한국을 대표하는 이 배우는, 송강호가 된 것이 아니라 송강호로 태어났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영화 '의형제(2월 4일 개봉)'에서 남파된 북한 킬러(강동원)를 놓친 뒤 국정원에서 퇴직한 사내를 연기한 송강호를 지난 22일 서울 한 호텔에서 만났다.

―영화를 보니 어떻습니까.

"안절부절못한다고 할까요. '지루하면 안 되는데' 하는 거죠. 저는 영화를 객관적으로 볼 수가 없으니까 사소해도 아쉬운 게 있는 편이에요."

―지루함이 영화 제1의 악덕입니까.

"아니죠. 예를 들어 '밀양'은 2시간20분 동안 사골을 끓이는 영화예요. 지루하다 아니다로 판단할 영화가 아니죠. 그런데 '의형제'는 새콤한 비빔냉면 같은 영화예요. 양념 맛도 독특하고 첫 맛과 끝 맛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면발이 축 늘어지면 안되는 거죠."

―이 영화에서 이를테면 어떤 장면이 아쉬운가요.

"이를테면 탈북한 어린아이가 너무 곱고 예쁜 나머지 좀 아련한 느낌이 없다는 거죠. 북에서 나온 뒤 시간이 흐르긴 했지만…."

―탈북한 아이가 이제 막 강남 연기학원에서 나온 것 같다는 말인가요.

"맞아요. 그렇지만 저는 촬영할 때 의견을 먼저 개진하는 쪽이 아닙니다. 감독이 큰 그림을 보니까. 혹시 제 의견을 물으면 그때는 적극적으로 말하는 편이에요."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은 시나리오인가요.

"예전에는 100% 그랬어요. 그런데 영화를 할수록 감독의 역할과 역량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감독은 선장입니다. 배의 재질과 성능도 중요하지만 어디로 어떻게 갈지는 선장이 정하니까요. 이젠 감독 대 시나리오가 50대 50쯤 되는 것 같습니다."

쇼박스 제공

―장훈 감독은 어떻게 50점을 얻었습니까.

"장 감독 데뷔작 '영화는 영화다'가 '엄청난 저예산으로 뛰어난 상업영화를 찍었다'고 회자 됐지만, 저는 신인 감독이 자기 이야기를 노련하고 세련되게 발언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보통 신인은 거칠게 마련인데. 그런 내공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매번 다른 역할을 연기하다시피 하면서 어떻게 매번 그렇게 실감 나는 연기를 합니까.

"과찬이시고…. 처음 연극할 때 선생님이나 선배들이 '누구나 생각하는 것과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관습적으로 하지 말라는 거죠. 제가 그런 노력을 해온 것 같습니다. 후배들이 연기 방법을 물어올 때도 '가장 단순한 연기가 가장 좋은 연기다'라고 말하죠. 그게 제 지론입니다.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말라는 거죠. 바보가 되라는 게 아니라, 군더더기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겁니다. 관객들에게 배우의 심정을 0.5초라도 집어넣으려 하면, 그게 바로 군더더기입니다. 어떤 캐릭터를 깊이 연구한다고 해서 그 캐릭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본질만 파악하면 단 한순간에도 그 사람이 될 수 있어요."

―그렇다면 루 게릭 환자를 연기하려고 실제 환자처럼 감량할 필요는 없다는 말인가요.

"김명민씨는 그렇게 판단한 거죠. 어떤 연기 스타일이 옳다고 할 수는 없어요. 저나 김윤석·설경구·최민식에게 그 역할이 갔다면 각각 다 달랐을 겁니다."

―송강호씨 대사의 리듬이 특히 이번 영화에서 최고인 것 같습니다.

"대사할 때는 틈새가 없어야 합니다. 그걸 영화에서 '마'라고 하는데, '설명되지 않은 영화적 시간'이라고 할까. 그 '마'가 쌓이면 지루해져요. '마'를 0.1초라도 주지 않으려고 하죠."

―벌써 출연작이 20편을 넘습니다. 배우 송강호에게 가장 의미 있는 감독 1명을 꼽으라면.

"하하하. 굳이 꼽는다면 이창동·박찬욱·김지운·봉준호, 이렇게 네 명을 꼽을 수는 있겠네요."

―중요한 순서대로인가요.

"나이 순입니다. 하하하."

―'의형제'를 찍으면서 배운 게 있다면 무엇입니까.

"'아무리 힘들어도 이를 악물고 끝까지 견디자' 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워낙 많이 뛰고 다치고 해서…. 몸이 예전 같지 않아요."

―배우로서 언제부터 나이 든다는 것을 느꼈습니까.

"이번 작품 하면서부터. 우하하하."

송강호는 인터뷰에서도 '마'가 쌓이지 않게 하는 배우였다. 뻔하거나 엉뚱한 질문을 받아도 내색하지 않고 지루하거나 어색해질 틈을 만들지 않았다. 그의 연기가 왜 특별한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