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원 이상의 1등 상금이 걸린 국가 대항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보내기 대회에서 한국 청소년들이 압도적인 실력을 선보이며 1위에 올랐다.

본지 1월 16일자 보도

한국인의 엄지손가락이 세계에서 가장 빨랐다. 14일 미국 뉴욕 고담홀(Gotham Hall)에 모인 250명의 관람객과 취재진들은 손바닥만한 휴대전화를 손에 쥐고 초(秒)당 8타 이상 치는 한국인의 손가락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한국·미국·러시아·브라질 등 13개국 600만명이 참가한 LG 모바일 월드컵에서 우승해 10만달러(1억1500만원)를 탄 배영호(18·재수생)군과 하목민(17·은광여고2)양이었다. 배군은 2008년, 하양은 2009년 한국대회 우승자다.

모바일 월드컵 한국 예선전은 작년 10월 시작됐다. 예선에만 280만명이 참가했다. 하양은 문자 39자(136타)를 18.74초 만에 전송해 '280만분의 1'의 국가대표가 됐다. 배군이 참가한 1회 대회에서는 20만명이 경쟁을 벌였다.

1초에 7.25타를 친다고 하면 1분에 420타 이상 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보통 한글타자도 350타 넘게 치면 빠른 편에 속한다.

결승전에 출전한 선수들은 13개국 26명이었다. 경기는 먼저 4번의 경기를 해 상위 4개팀을 가려내고 나머지 9개팀이 패자부활전을 벌여 2개팀을 뽑아 총 6개팀이 최종 결승전을 치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경기에 사용된 휴대전화는 0~9까지의 숫자, 별과 우물 정(井) 자 버튼 등 12개를 사용하는 '숫자 키패드'와 일반 컴퓨터의 키보드같이 A~Z까지의 알파벳과 다양한 기능 키까지 사용하는 쿼티(Qwerty) 키패드 두 가지였다.

첫 번째 경기와 두 번째 경기는 문제 창에 뜨는 단어들을 숫자 키패드 선수와 쿼티 키패드 선수가 각각 정확하게 입력하는 방식이었다. 오타가 날 경우 다시 입력하게 되어 있어 정확하게 써야 한다.

세 번째 경기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단어들을 두 선수가 동시에 정확하게 입력하면 단어가 사라지는 게임이었다. 네 번째 경기는 릴레이 경기로 선수 두명이 주어지는 단어를 번갈아 가면서 입력하는 방식이었다.

출제된 문제는 디디에 드록바, 자기계발, 오일쇼크, 박지성, Arkansas, partition, centrist, Brisbane, Jim Carrey 같은 것들이었다. 모든 문제는 각 선수들 해당 국가 언어로 출제됐고 동일한 타수로 치도록 설정됐다.

네 번째 경기까지 진행한 결과 상위 4팀은 한국, 미국, 인도네시아, 뉴질랜드였다. 떨어진 나머지 9개 팀이 패자부활전을 벌여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이 최종결승전에 가까스로 진출하게 됐다.

LG전자 제공 엄지만 이용해 치는 게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것보다 빠르다. 순식간에 입력하는 문자를 보고 외국인들은 입 을 벌리고 탄성을 내뱉었다.

최종 결승전의 명칭은 '죽음의 경주(Race of Death)'란 레이싱 게임이었다. 각 나라를 상징하는 물체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달렸다. 제시된 단어를 빨리 입력하면 속도를 내서 달리고 오타를 입력하면 뒤처졌다.

한국은 줄곧 미국과 앞서거니 뒤서거니를 반복했지만 결국 가장 먼저 결승점을 통과했다. 2위는 미국이, 3위는 패자부활전에서 올라온 아르헨티나가 차지했다.

쿼티 키패드를 맡은 배영호군은 "4주 전에 처음 쿼티 키패드를 받아서 조금 걱정되긴 했지만 결승전에선 '반드시 이긴다'는 마음으로 경기를 치렀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휴대전화를 사용했다는 하양은 작년 서울 강남 코엑스에 친구들과 놀러갔다 우연찮게 예선전에 참가했다. 집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 이름을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 문자로 쳐보는 게 대회 준비의 전부였다.

LG 전자 MC사업본부 한국사업부 조성하 부사장은 "이번 대회에 참여한 연령대를 보면 10대에서 50대까지 폭이 넓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문자 사용에 상당히 친숙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 엄지왕에 도전장을 내민 것은 10대들뿐만이 아니었다. 중·장년층 엄지족을 위한 '40대 리그'에서 우승한 심희원(40)씨는 118타를 53.95초에 쳤다. 초당 2.18타를 치는 속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