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진 터치커넥트 사장(한글과컴퓨터 창업자)

아이폰의 국내 판매로 많은 변화가 생기고 있다. 국내 모바일 개발 환경 표준(위피 플랫폼)의 의무 탑재가 풀리면서 외국 휴대폰의 국내 진입이 자유로워졌고 급변하는 시대 상황에 맞지 않았던 위치 기반 서비스 관련 법률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다.

외면당했던 무선랜(와이파이) 서비스도 큰 관심을 모으며 새로운 무선통신 인프라의 한 축으로 재등극했다. 와이파이는 그동안 널리 보급됐고 대중적 인기를 누렸지만 이동통신사의 사업적인 면에서 값싼 와이파이는 철저히 외면당해 왔다. 하지만 아이폰의 등장으로 KT는 물론이고 SK텔레콤까지 무선랜의 위력을 인정하고 그동안 금기시해 왔던 무선랜을 스마트폰은 물론이고 일반 휴대폰에까지 채택하겠다는 선언을 하게 됐을 정도다.

사실 그동안 이동통신사들은 값비싼 이동통신망을 통한 무선데이터 서비스 판매가 위축될까 무선랜 채용을 꺼렸었는데, 이제는 그런 기득권을 스스로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음악이나 모바일 게임과 같은 콘텐츠 사업 분야에서도 KT는 애플의 아이폰을 채택하면서 음악·벨소리·모바일게임 등 콘텐츠 사업에서 쥐고 있던 기득권을 포기했다. 전체 단말기가 아닌 아이폰에 한정된 조치였지만 큰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결국 이는 다시 SK텔레콤에 영향을 미쳐 소비자들의 편익을 위해서라면 자신들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한다는 항복선언에 가까운 전략 변경을 이끌어냈다. 정말 아이폰이 도입되기 전인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일이 벌어지고 있다.

2007년 6월 말 아이폰이 세계 시장에 출시될 때부터 아이폰의 국내 출시를 기대했고 실제 아이폰이 국내 시장에 도입되는 과정에서도 갖가지 규제를 풀기 위해 애를 태웠던 필자나 수많은 이동통신 소비자들을 생각하면 이런 변화는 정말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변화는 소비자들만의 기쁨이고 승리이며 우리나라의 단말기 제조업체들이나 이동통신사들에는 해가 되는 일일까?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필자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 처음 아이폰의 세계 시장 출시 이후 풀터치 스크린폰의 시대가 열렸을 때 그 변화에 빠르게 적응한 우리나라 단말기 업체들의 위상은 오히려 높아졌다. 삼성전자 등 단말기 제조업체들은 소프트웨어에 대한 인식과 저변이 부족한 상황들 때문에 지금은 아이폰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만,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이 변화를 더 큰 기회로 만들어 낼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기업식의 딱딱한 사고방식, 그리고 소프트웨어와 콘텐츠, IT 생태계에 대한 몰이해를 떨치고 마음과 귀를 열어 새로운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국내 대기업들이 하드웨어에 관한 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지만 이제는 그것만으로는 미래의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

SK텔레콤 같은 이동통신사들은 이미 성숙단계에 들어선 음성시장을 넘어 데이터 시장으로 가야 했다. 하지만 이통사들은 전혀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아마도 지금 아이폰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모든 현상들이 바로 데이터 시장의 모습일 것이다.

고객을 소중히 여기고 고객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 자신들의 사업을 새로운 지평으로 끌어내 줄 개발자들, 콘텐츠 사업자들과 마음을 열고 함께해야 한다. 그렇게만 한다면 지금의 상황은 더 큰 발전을 이룰 수 있는 기회의 순간일 것이다. 가야 할 길은 너무나 명백하다. 국내 업계의 빠른 적응을 믿고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