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연 판사

작년 초 국회를 폭력이 난무하는 난장판으로 만들었던 국회 로텐더홀 점거사태 당시 국회 경위(警衛)를 폭행하고, 국회집기를 부순 혐의 등으로 기소된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에게 14일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강 의원은 당시 고함을 지르면서 원탁 위에서 연방 뛰어오르는 장면이 방송전파를 타면서 '공중 부양(浮揚) 의원'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이날 판결에 대해 "법원이 국회 폭력에 면죄부를 준 상식 이하의 판결"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서울남부지법 이동연 형사1단독 판사는 이날 검찰이 불구속 기소한 강 의원에 대한 1심 선고공판에서, 강 의원에게 적용된 3가지 법 위반 혐의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우선 재판부는 강 의원에게 적용된 국회경위 폭행 등 공무집행방해 혐의의 전제가 된 김형오 국회의장의 질서유지권 발동 자체가 적법하지 않다고 봤다. 재판부는 "작년 1월 당시 국회 본회의가 열릴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며 "따라서 국회 본회의 개최와 무관하게 발동된 질서유지권과 농성장 현수막 철거는 그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질서유지권 발동에 근거해 국회 경위가 현수막을 철거한 행위는 법이 보호할 필요가 없는 '적법하지 않은 공무수행'이며, 그에 반발한 강 의원의 '육탄공격'도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1월 5일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가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실에 들어가 원탁 위로 뛰어올라가 발을 구르며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재판부는 또 '국회 경위 폭행'의 원인이 된 현수막 철거와 관련해서도, "한나라당민주당도 여러차례 현수막을 부착한 적이 있지만, 강제철거된 적이 없기 때문에 민노당 현수막만 철거한 것은 비례의 원칙(형평)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강 의원이 국회 경위의 멱살을 잡아 폭행했다는 공소사실에 대해서는 "항의의 의사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지, 위해를 가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 공무집행방해죄의 성립 요건인 위력(威力) 행사가 아니라고 봤다.

재판부는 강 의원이 당시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실에 침입해 난동을 피워 박 총장의 업무를 방해(방실침입과 공무집행방해)한 혐의에 대해서는 "박 사무총장은 당시 소파에서 신문을 보고 있었는데 신문 보는 것이 공무의 일환일 수는 있지만, 박 총장은 이미 비서가 스크랩해준 신문을 본 뒤여서 공무 중이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 강 의원이 그 과정에서 탁자를 부순 혐의(공용물건 손괴)에 대해서도 "당시 강 의원은 극도로 흥분한 상태로, 탁자를 부순다는 인식(고의성)이 있었다고 보기 어려워 죄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같은 판결내용에 대해 법조계는 물론 법원 내부에서조차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황당한 판결"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대부분의 증거 인정과 법리적 판단이 강 의원에게 유리하게 돼 있는데, 무죄를 선고하기 위해 억지로 논리를 짜맞췄다는 느낌이 든다"며 "아무리 양보를 하더라도, 공용물건(탁자)을 부수려는 의도가 없었고 단순한 과실(過失)이라고 본 부분은 정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법조계 일각에선 이번 판결이 판사 개인의 정치적 신념이 작용한 결과가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반응까지 나왔다.

법원 고위간부 출신 변호사는 "우리 사회의 이념 갈등이 사법부까지 파고들어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실망스러운 판결"이라며 "판사는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떠나 법률에 따라 재판을 해야 하는데, 재판의 독립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판사의 방종이 도를 넘은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검찰도 즉각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대검찰청은 이날 자료를 내고 "국민들이 다 보았는데 어떻게 무죄인가? 국회의원이나 국회 내에선 손괴죄의 개념과 의도가 다를 수 있나? 이것이 무죄라면 무엇을 폭행이나 손괴, 방해행위로 처벌할 수 있는가?"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