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학교육 프로그램이 중동에 '수출'됐다. 카이스트는 14일 아랍에미리트(UAE)의 국립 칼리파 과학기술연구대학(Khalifa University of Science, Technology and Research·KUSTAR)과 파트너십 협약을 맺고 연구·교육 노하우와 커리큘럼 등을 패키지로 제공하기로 했다.

카이스트 서남표 총장은 이날 아랍에미리트의 수도 아부다비에서 KUSTAR의 아리프 술탄 알 하마디 총장과 협약을 체결한 뒤 기자회견을 갖고 "KUSTAR를 카이스트와 같은 세계적인 과학기술대학으로 만드는 데 협조하겠다"고 발표했다.

두 대학은 ▲카이스트 교육·연구 경험 공유 ▲KUSTAR 학사·석사·박사 과정을 신설하는 데 카이스트가 협력 ▲KUSTAR에 교원 파견 ▲강의교재·커리큘럼 개발에 협력 학생교환 등에 합의했다.

기자회견에서는 '두 학교 간 협력'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카이스트가 가진 대학경영과 연구·교육 노하우를 종합 패키지로 KUSTAR에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KUSTAR는 이 나라 최고 수준 학생들이 입학하는 대학으로, UAE 정부가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KUSTAR 아리프 술탄 알 하마디 총장은 "카이스트와의 협약으로 우리 대학에 매우 다양한 교육과 연구 프로그램이 제공될 것"이라며 "한국과의 파트너십으로 우리 대학 학생들이 UAE 미래기술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카이스트와 아랍에미리트 KUSTAR 대학이 14일 아부다비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파트너십 협약 후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왼쪽부터 파헤드 알콴타니 아랍에미리트 원자력 전력공사 언론담당, 아리프 술탄 알 하마디 KUSTAR 총장, 카이스트 서남표 총장, 압둘라티프 모하메드 알 샴시 아랍에미리트 고등기술연구원 사무총장.

이번 협약은 지난해 12월 한국전력 컨소시엄의 원전(原電) 수출계약 당시 양국 정부가 합의한 협력방안에 따른 것으로, 협력 프로젝트에 드는 비용은 양국 정부가 부담할 예정이다. 당장 카이스트가 금전적 수익을 얻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유럽 대학의 분교가 20여개나 들어서 있는 중동의 허브국가에 한국 대학의 브랜드 이미지를 키움으로써 엄청난 무형의 이익이 돌아올 것으로 교육계는 분석했다.

중동은 과거 한국의 건설 근로자들이 땀을 흘리며 돈을 벌던 지역이었지만, 이제 대학교수들이 한국식 교육 과정과 연구·강의 시스템을 통째로 가져다 이식(移植)시키는 '교육 수출'에 나서게 된 것이다.

서 총장은 "올해부터 우리 대학 교수 20~30명이 KUSTAR에 파견돼 커리큘럼을 짜고 강의와 연구를 하게 된다"며 "우리 학생들도 교환 학생으로 공부하고, 그쪽 학생이 우리 대학에 와서 강의도 듣게 된다"고 말했다. 모든 강의와 연구는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할 예정이다.

또 앞으로 KUSTAR에 기계공학, 전기·전자공학, 원자력공학, 나노기술, 로보틱스, 에너지공학, 정보통신기술 등의 학위 과정을 신설하는 데 카이스트가 협력하게 된다고 서 총장은 설명했다. 서 총장은 "특히 UAE 원자력 에너지 프로그램을 지원하기 위해 원자력분야 공동연구도 실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한국 대학들이 개발도상국에 교육 프로그램을 보급한 경우는 있었지만, 개별 교수나 프로그램을 뛰어넘어 학교의 총체적 연구와 교육역량이 특정 대학에 전달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카이스트가 UAE의 협력 파트너로 선정된 이유에 대해 서 총장은 "우리 대학들이 국제사회에서 짧은 시간 동안 급성장했으며 그 노하우를 외국 대학들이 얻고자 하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영국 대학평가기관인 QS가 실시하는 'QS 세계대학평가'에서 카이스트는 불과 4년 전 세계 200위 수준이었지만 작년에는 69위로 뛰었다. 공학분야 경쟁력은 전 세계 21위다.

서 총장은 "과거에는 외국 학회에 나가도 세계 유명 대학들이 한국 대학을 잘 만나려고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쪽에서 먼저 미팅을 신청해온다"고 말했다. 그간 한국 대학들이 추진해온 대학개혁들이 글로벌 사회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마침 아부다비에 있는 마스다르 공과대학(Masdar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은 미국 MIT와 협력관계를 맺어 학교를 키운다고 합니다. 공교롭게도 저는 '친정 대학'(서 총장은 MIT 기계공학과 학과장 출신)과 경쟁을 하는 입장이 됐어요. 더 잘해야겠고, 한국 대학의 우수성을 알릴 좋은 기회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