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이 휩쓸고 간 아이티는 폭격을 맞은 전쟁터와 다름없는 처참한 상황이다. 거리 곳곳에 시신이 널려 있고, 부상자들이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레이먼드 조지프 아이티 주재(駐在) 미국 대사는 "이번 지진은 엄청난 '재앙(災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궁과 의회, 재무부 등 정부 주요 청사를 비롯해 병원과 학교 등 대형 건물들은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붕괴되거나 주저앉았다. 수도 포르토프랭스(Port-au-Prince)의 5층짜리 대형 병원 건물도 폭삭 주저앉았다. 무너진 건물에서는 구조를 요청하는 비명소리와 신음소리가 이어지고 있으며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포르토프랭스 거리에는 생존자들이 피범벅이 된 채 발견되고, 도로가 시체로 뒤덮여 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보도했다.

사상자 수는 즉각 확인되진 않았지만 이미 수천명이 사망했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으며, 매몰되거나 실종된 사람이 넘쳐나면서 사망자도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미국 기상학자인 데이비드 월드는 "인구가 밀집한 수도에서 가까운 곳에 강한 지진이 발생했기 때문에 사상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지진 현장은 어둠이 깔리면서 구조작업에 애를 먹고 있으며 날이 밝아야 피해상황이 어느 정도 집계될 전망이다. 태평양 쓰나미센터는 지진 발생 직후 아이티는 물론 쿠바, 바하마, 도미니카공화국 등 인근 카리브해 지역에 쓰나미 경보를 발령했다가 1시간 30여분 만에 해제했다.

피해 상황과 규모

이번 지진은 200만명이 밀집한 수도 포르토프랭스를 강타해 피해가 컸다. 이곳에 거주하는 AP 통신원은 "거리에는 시신들이 널브러져 있고 식료품 등을 약탈하려는 사람들까지 겹쳐 아수라장"이라고 전했다.

현지 주재 미 구호단체 '푸드 포 더 푸어(Food for the Poor)'의 라치마니 도메산트는 "포르토프랭스가 밤이 되면서 암흑천지로 바뀌었다. 사람들이 거리를 뛰어다니며 울부짖고 있다"고 전했다. 어둠 속에서 두려움에 떨던 사람들은 광장에 모여들어 함께 밤을 지새웠다. AP통신은 수천명의 사람들이 함께 흐느끼거나 찬송가를 부르고 있다고 현지 상황을 전했다. 이 통신은 "사람들이 숨진 가족들의 시신을 어떻게 수습할지 몰라 일단 무너진 집 옆에 쌓아두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인 여성 구호요원 질리언 소프(Thorp)는 무너진 건물 아래 10시간 넘게 갇혀 있다가 160㎞를 달려온 남편에 의해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지진으로 대통령궁이 무너졌지만 르네 프레발(Preval) 아이티 대통령은 무사했다. 그는 울먹이며 "수천 명이 죽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하고, 국제사회에 구호를 호소했다. 한편 켈리 배스천(Bastien) 상원의장도 붕괴된 의사당 건물에 매몰된 것으로 알려졌다.

교민 상황

아이티 거주 교민들은 출장자를 포함해 70여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13일 "아이티 교민을 비롯해 현지 체류 중인 70여명의 한국인을 대상으로 확인한 결과, 이번 강진으로 현지 교민 등 한국인 5명의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며 "현지에 출장 중인 강모씨 등 4명이 투숙한 5성급 카리브호텔이 붕괴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호텔 붕괴 당시 이들의 존재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도미니카 주재 한국대사관 이언우 영사는 지진이 발생한 직후 아이티에 주재하고 있는 현지 영사협력원 양희철(국내섬유회사 윌비스 현지 법인장)씨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교민들의 안전을 점검하고 있다. 주로 섬유기업 관련자들인 한국 교민들은 대부분 소나(zona)라는 산업 공단에서 일하고 있다. 대사관 측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섬유 업체 5곳도 상당한 피해를 보았으며 일부 교민은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고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상태라고 말했다.

작년 11월 아이티에 파견된 한국군 소속 이선희 소령은 안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소령은 지진 발생 1시간 후 도미니카 주재 한국대사관에 전화를 해 "주둔지에 여진이 있었다. 오래 통화할 수 없는 상황이며 헬기를 타고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고 있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국제사회 긴급 구조·구호

아이티에 대한 국제사회의 긴급지원도 잇따르고 있다. EU(유럽연합)는 300만유로(약 50억원)를 긴급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독일 정부는 EU와 별도로 100만유로의 긴급 구호자금을 지원키로 했다. 버락 오바마(Obama) 미 대통령은 긴급 지원과 구호팀 급파를 지시했고, 미 국무부는 3개의 구호팀이 13일 아이티로 떠날 것이라고 발표했다. 백악관은 이날 홈페이지 첫 화면에 '아이티를 돕자(Help for Haiti)'는 문구와 아이티 지도 등을 띄워 구호 캠페인에 나섰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와 옥스팸 등 구호단체들도 구호물품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슈] 아이티 7.0 강진 대참사 "전쟁보다 참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