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지역협력체는 모두 5개가 있다. 동남아시아 10개국이 뭉친 아세안(ASEAN)이 40년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여기서 두 개의 협의체가 파생됐다. 아세안과 한국·중국·일본이 모인 아세안+3이 첫째고, 여기에 호주·뉴질랜드·인도가 추가된 동아시아정상회의(EAS)가 2005년 출범했다. 올해로 설립 21주년을 맞는 아·태경제협력체(APEC)와 북한이 유일하게 참가하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 있다.

아시아는 이처럼 다른 어느 지역보다 지역협력체가 활성화돼 외형상 정치·경제·문화적 측면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한계도 뚜렷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안보' 차원에서는 각국의 역사·영토 문제 등이 얽혀 있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같은 견고한 안보공동체로 성장하기에는 갈길이 멀다는 것이다.

안보공동체는 보통 4단계의 형성 과정을 거친다. 국가들 간에 안보문제를 갖고 대화를 시작하는 1단계에서, 안보문제 대화가 정례화·상설화되는 2단계를 거쳐 3단계에서는 안보대화가 조약에 해당하는 합의서에 의해 운영된다. 4단계는 모든 회원국들이 파견·구성한 집단방위군대가 존재하거나, 유사시에 회원국들이 군대를 파견키로 한 합의가 존재하는 '집단 자위' 조치가 포함된다. NATO의 경우가 4단계이다.

현재 '아시아의 안보공동체' 격인 ARF는 2단계에 머물러 있고 이를 3단계로 끌어올리기 위해 아세안이나 APEC 등과 어떻게 연계할 지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아시아의 안보공동체가 4단계 집단방위체제로 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3단계를 지향해야 한다"(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것이다. 아시아에는 한국·일본 등 미국과 양자동맹을 맺고 있는 국가들이 있고, 지역 국가들 사이에 적대관계가 해소되지 않은 국가들(남한-북한, 중국-대만 등)이 존재해 집단방위기구 결성은 목표로 할 수조차 없는 형편이다.

남주홍 국제안보대사는 "아시아 안보공동체를 구축하려면 무엇보다 '아시아 지역 정체성' 확립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국가들의 신뢰 구축에 필요한 제도적 장치도 필수적이다. 아시아 일부 지역이 아직 냉전 구조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우선 역내 국가 간의 군비통제를 추진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의 군비통제 성공 모델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