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민주당 정권이 출범한 직후인 작년 9월 하순. 권철현(權哲賢) 주일대사는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새 외상 면담 일정을 잡아놓고 무슨 선물을 가져가야 할지 고민했다. 오카다 외상은 선물을 일절 받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사람. 그렇다고 빈손으로 갈 수도 없어서 오카다 비서진에게 타진한 결과 한국 정치에 관심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2005년 방영된 MBC 드라마 '제5공화국' CD를 가지고 갔다. 안 받을까 봐 "보고 돌려주시면 된다"는 말도 했다. 그러나 오카다 외상측 관계자에 따르면 "너무 재미있어서" 41편을 모두 봤다고 한다. 정권이 출범한 지 110일 남짓 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틀·사흘에 한 편씩 봤다는 얘기가 된다.

오카다 외상은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가 물러날 경우 후임 총리로 가장 유력한 사람이다. 대중적 인기로 치면 하토야마 총리,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민주당 간사장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야당 시절에도 '총리감'을 묻는 여론조사에서 전체 정치인 중 항상 1·2위 자리에 오르던 사람이다.

워낙 청렴해 '클린 오카다', 자명종 시계 고장으로 일생에 단 두 번밖에 늦잠을 자지 않았을 정도로 자기관리에 철저해 '로봇 오카다'라는 별명으로 통한다. 의원들 간담회를 할 때도 식사를 하고 오라고 미리 통보하거나, 밥값을 각기 내도록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외국인 지방참정권 부여를 추진하는 의원모임 회장을 맡고 있는 등 과거사 청산에도 매우 적극적이다.

지난달 28일 러시아 모스크바를 방문했던 오카다 가쓰야 일본 외상이 기자회견장에서 생각에 잠긴 모습.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그런 오카다 외상의 체중이 외상 취임(9월 16일) 후 크게 줄었다. 그의 개인 블로그에 올라 있는 체중이 76㎏인데 지금은 70㎏ 정도라는 것이다. 모습이 초췌해졌고 목소리도 작아졌을 뿐 아니라 '가벼운 우울증' 증세를 보인다는 보도마저 나오고 있다.

이유는 미·일관계 때문이라고 한다. 후텐마(普天間) 미 해병대 비행장 이전 문제를 둘러싼 미·일 갈등의 한가운데서, 주무장관으로서의 고민이 너무 깊어서다.

그의 입장은 오키나와현 이외 지역으로의 이전을 밀어붙이고 있는 하토야마 총리, 오자와 간사장과 처음부터 달랐다. 합의 이행을 할 수밖에 없고, 그것도 미국측이 요구한 대로 2009년 연내에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그의 뜻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굴러가고 있다.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존 루스(Roos) 주일 미대사가 오카다 외상의 면전에서 "이럴 수 있느냐"는 고함을 지른 일까지 있었다.

오카다 외상은 이 문제에 대한 정부 입장 설명을 위해 다음 주 미국을 방문, 힐러리 클린턴(Clint on) 국무장관을 만나기로 했다. 후텐마 문제와 함께, 미·일방위조약 개정 50주년인 올해 '신 동맹질서' 구축방안을 협의할 예정이다.

그러나 후텐마 문제에 대한 미국측 불만이 민주당 정권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는 국면이어서 큰 난관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가 미·일동맹을 새로운 단계로 연착륙시키는 데 성공할지 여부에 따라 그의 정치적 미래도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오카다 외상에게 또 하나의 넘어야 할 벽은 오자와 간사장이다. 오카다 외상은 체질적으로 '파벌정치'를 싫어한다.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고 누구도 부리려 하지 않는다. 1993년 자민당을 탈당할 당시에도 "일국의 총리 자리가 정치자금을 얼마나 모으느냐에 의해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 일이 있다.

세력 중심의 정치를 해온 오자와와는 상극이다. 1997년 신진당 해산 때는 오자와의 일방통행을 비판하면서 공개적으로 맞붙은 일도 있었다. 지금도 민주당 내 반(反)오자와 그룹의 대표주자로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 일본 정가에서는 오카다 외상이 결국 오자와 간사장으로부터 용도 폐기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동시에 오카다가 대중적 지지를 바탕으로 오자와를 극복할 것이라는 분석도 함께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