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정 도쿄특파원

새해 연휴인 2일 도쿄 메이지(明治)신궁을 찾았다. '하쓰모데'(初詣·새해 들어 신사에서 기도하는 것)란 관습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전철을 타고 수만명이 찾았다. 이날 일본 TV에서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것은 대학생 역전(驛傳)마라톤이었다. 연도에 응원 인파가 가득했다. 인산인해를 이룬 연말 재래시장에서도 같은 것을 느꼈다. "일본은 정말 고른 나라이구나."

일본에서 이렇게 다섯 번째 새해를 맞았다. 시간이 멈춘 듯하다. 경제가 성장을 멈춘 1995년 이후, 욕망을 잃었다고 할까? 좋게 해석하면 자족(自足) 모드에 들어갔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격한 갈등도 찾기 힘들다.

한국은 이런 일본을 "정체됐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과거 일본을 보면 다른 얼굴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이 서 있는 지금 발전 단계의 일본이다. 그 속에서 선진국 관문을 여는 열쇠도 찾아낼 수 있다.

일본은 질풍 같았다. 소득 1만달러를 넘어선 것은 1984년. 4년 후 2만달러, 다시 4년 후 3만달러를 넘어섰다. 4만달러를 돌파한 것은 3년 후인 1995년이었다. 1만달러에서 4만달러로 비약하는 데 11년이 걸린 것이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스피드였다.

일본이 4만달러를 돌파한 1995년, 한국은 1만달러 시대를 열었다. 2만달러를 돌파한 것은 2007년이다. 일본이 4년 걸린 일을 12년 걸려 이룬 것이다. 앞으로 용케 매년 5%씩 성장한다고 해도 4만달러 시대는 16년 뒤 이뤄진다. 일본은 7년 걸린 일이다. 이런 지표를 보면 '정체된 일본, 비약하는 한국'이라는 상식은 여지없이 깨진다. 한국은 성장했을 뿐 비약하지 못한 것이다.

일본은 어떻게 비약했을까? 소득 1만달러를 돌파한 1984년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4.5%였다. 4만달러를 넘은 1995년은 1.9%였다. 성장은 둔했지만 국력을 반영하는 엔화가치는 1984년(달러당 연평균 251엔)부터 1995년(달러당 102엔)까지 두 배 이상 상승했다. 강한 체력이었다. 엔고불황과 구조조정을 견뎌내면서 경제를 4만달러 수준으로 고도화(高度化)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한국은 반대였다. 한국이 1만달러를 넘어선 1995년 달러당 774원이던 원화가치는 2008년엔 1259원으로 급락했다. 선진국 관문에서 원화가치는 여지없이 추락했다. 외환위기도 두 번 겪었다. 결국 체력이었다. 체력이 약해 경상수지가 무너지면서 환율에 굴복한 것이다. 한국이 여태껏 선진국이 못 된 이유다.

'체력'이란 무엇일까? 소니와 마쓰시타가 한물간 것은 일본의 4만달러 시대와 맞물린다. 일본이 굴복하지 않은 것은 대기업 덕분이 아니라 강한 중소기업, 강한 중산층, 강한 지방이 견뎠기 때문이다. 한국은 달랐다. 삼성·LG가 웅비하는 동안 나라는 위기에 몰렸다. 중소기업과 중산층, 지방이 무너진 결과였다. 비약하는 경제와 못하는 경제의 차이를 한국이야말로 체험으로 알고 있다. 기반이 강한가 약한가의 여부다.

2010년 일본은 멈춰 있다. 하지만 작년 한 해 달러당 90엔의 도전을 견뎠을 만큼 기반은 강하다. 2010년 한국은 밝은 성장세로 출발했다. 하지만 다시 찾아올 도전을 극복하고 비약할 수 있는 강한 기반을 구축했는지 장담하기 어렵다.

한국은 반드시 비약해야 한다. 역사에 사무친 일본이란 장벽을 뛰어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대기업에서 구멍가게, 부자에서 서민, 서울에서 시골까지 전체가 비약하는 것 이외에 다른 도리가 없다. 우리 모두 함께 전진해야 하는 것이다.